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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신무왕릉 -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시호(諡號)를 신무라 하고...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동방동 660

신문왕릉<神文王陵>의 동남쪽에 있으며 얕은 구릉의 경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15m, 높이 3.4m이다. 일반 민묘보다 규모가 클 뿐 다른 특징이 없다. 봉분만 남아 있을 뿐 호석<護石>의 일단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장식물도 없다. 신라 제45대 신무왕<神武王>(재위<在位> 839)은 본명이 김우징<金祐徵>이고, 상대등 균정<上大等 均貞>의 아들이며, 희강왕<僖康王>의 사촌동생이다. 신라 말기에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왕위쟁탈전이 심해져서 부친인 균정<均貞>을 받들어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839년 정월에 청해진대사 장보고<淸海鎭大使 張保皐>의 도움으로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한지 7개월만에 죽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왕<王>이 죽자 시호<諡號>를 신무<神武>라 하고,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하는데, 이 고분을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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