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라효공왕릉 - 후백제의 견훤과 후고구려의 궁예에게 국토를 유린당하여...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배반동 14

신문왕릉<神文王陵>의 동쪽 얕은 구릉상에 송림<松林>으로 둘러싸여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21.2m, 높이 5m이다. 봉분밑에 호석<護石>의 자연석 받침돌 몇 개가 보이고 있어 무열왕릉<武烈王陵>과 같은 형식의 호석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외의 장식물은 하나도 없다. 신라 제52대 효공왕<孝恭王>(재위<在位> 897-912)은 본명이 김요<金嶢>이고, 헌강왕<憲康王>의 서자<庶子>이다. 재위기간은 국정이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며, 후백제<後百濟>의 견훤<甄萱>과 후고구려<後高句麗>의 궁예<弓裔>에게 국토를 유린당하여 많은 국토를 빼앗겼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912년 왕<王>이 죽자 시호<諡號>를 효공<孝恭>이라 하고, 사자사<師子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왕이 죽자 사자사<師子寺> 북쪽에서 화장<火葬>하여 그 유골을 모아 구지제<仇知堤>의 동산<東山> 옆에 묻었다고 하여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 왕릉<王陵>의 남쪽에 사지<寺址>가 있어 사자사<師子寺>터로 추정하고 있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