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덕여왕릉 - 신라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여왕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보문동 산 79-2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등의 사서가 여왕의 릉을 낭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여왕 자신이 '사천왕 바로 위가 되는 도리천에 장사 지내 달라'고 한 유언과 함께 그 아래 사천왕사가 건립될 것을 예견하였다 하여 유명한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즉,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하였는데 신하들은 도리천이 하늘위로 있는 산이어서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왕은, 도리천은 낭산의 산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한다.
그래서 이곳 신유림 정상에 장사를 지냈다.

그후 문무왕때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한 후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건립하고 호국신인 사천왕을 모셨다. 이후 비로소 선덕여왕의 유언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천왕이 있는 곳을 사왕천이라 하고 그 위에 있는 부처의 세계를 도리천이라 하는데 곧 낭산 정상이 도리천인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통력이 있는 여왕의 릉으로서는 매우 빈약한 감이 있다. 또 그 아래 여러 기의 봉분이 있는 점등은 선덕여왕릉 파악에 혼란을 준다 하겠지만, 일단 알려진 현재의 봉분이 여왕릉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능의 둘레는 약 73m. 원형봉토분으로서 지름 23.6m, 높이 6.8m이다.
봉분 밑에는 30-60㎝ 크기의 깬돌 2, 3단으로 호석을 둘렀고, 그 외부에 호석의 높이만한 크기의 돌을 기대어 받쳐놓았다. 이외에 십이지신상이나 난간 구조물은 보이지 않고, 기타 장식물도 배치되지 않았다.

소형의 자연석을 2단으로 호석을 쌓아 빈약하게 보이는데 그것은 후대의 후손들이 보수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다 한다.
선덕여왕릉으로 부터 아래쪽 약 100m 지점에 몇기의 고분이 있었는데 이들 바로 앞에는 석탑부재 또는 판석이 있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큰딸로서 신라 최초의 여왕이다.
재위기간 16년(632∼647)동안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목탑을 세워 불교 건축에 엄청난 공헌을 한 왕이며, 김춘추와 김유신 등 영웅호걸을 거느린 신라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왕이다.

특히, 재임기간에 이룩한 첨성대와 그가 누은 옥녀봉파는, 동짓날 해가 뜰때면 일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