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보문동 608
진평왕의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백정이며 진흥왕의 장손자이다.
어머니는 만호부인이고, 왕비는 마야부인이다. 579년에 왕이 되어 632년에 죽을 때까지 54년동안 왕위에 있었다.
신라 시조 혁거세 다음으로 재위기간이 길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고구려의 침공에 대항하는 한편 수나라와 수교하였고 수나라가 망하자 당나라와 수교하였다. 국제적으로는 원광ㆍ담육 등 승려를 중국으로 보내 수도하게 하는 등 불교진흥에 힘썼다. 특히 경주의 남산성을 쌓았고 명활산성을 개축하는 등 왕경방어 대책에도 힘썼다.
왕릉의 외부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이다.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보호석을 갖춘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몇개만 확인되고 있다.
이와같이 자연석을 이용하여 보호석을 마련한 예는 삼국말기와 통일신라 초기에 보이던 형식이다.
화려했던 재임기간의 업적에 비해 너무나도 소박하나 천박스럽지가 않은 이 능이다.
지름 36.4m, 높이 7.9m.
봉분의 밑부분에 호석의 받침돌로 보이는 자연석이 몇 개 보일 뿐 별다른 장식물이 없다.
진평왕의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백정이며 진흥왕의 장손자이다.
어머니는 만호부인이고, 왕비는 마야부인이다. 579년에 왕이 되어 632년에 죽을 때까지 54년동안 왕위에 있었다.
신라 시조 혁거세 다음으로 재위기간이 길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고구려의 침공에 대항하는 한편 수나라와 수교하였고 수나라가 망하자 당나라와 수교하였다. 국제적으로는 원광ㆍ담육 등 승려를 중국으로 보내 수도하게 하는 등 불교진흥에 힘썼다. 특히 경주의 남산성을 쌓았고 명활산성을 개축하는 등 왕경방어 대책에도 힘썼다.
왕릉의 외부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이다.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보호석을 갖춘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몇개만 확인되고 있다.
이와같이 자연석을 이용하여 보호석을 마련한 예는 삼국말기와 통일신라 초기에 보이던 형식이다.
화려했던 재임기간의 업적에 비해 너무나도 소박하나 천박스럽지가 않은 이 능이다.
지름 36.4m, 높이 7.9m.
봉분의 밑부분에 호석의 받침돌로 보이는 자연석이 몇 개 보일 뿐 별다른 장식물이 없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