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서악동 산 92-2
선도산<仙桃山>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이며, 지름 15.3m, 높이 4.3m로 봉분<封墳>의 규모는 그다지 크기 않다. 봉분 아래에 호석<護石>의 받침돌로 보이는 자연석이 몇 개 나와 있을 뿐 다른 장식물은 보이지 않는다. 위치와 호석 구조로 보아 매장주체는 횡혈식 석실<橫穴式 石室>일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재위<在位> 857-861)은 본명이 김의정<金誼靖>(혹은 김우정<金祐靖>)이고, 신무왕<神武王>의 이복동생이다. 재위기간 동안 별다른 치적은 보이지 않지만 제방<堤防>을 수리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등 권농<勸農>에 힘썼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861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諡號>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나 공작지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선도산<仙桃山>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이며, 지름 15.3m, 높이 4.3m로 봉분<封墳>의 규모는 그다지 크기 않다. 봉분 아래에 호석<護石>의 받침돌로 보이는 자연석이 몇 개 나와 있을 뿐 다른 장식물은 보이지 않는다. 위치와 호석 구조로 보아 매장주체는 횡혈식 석실<橫穴式 石室>일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재위<在位> 857-861)은 본명이 김의정<金誼靖>(혹은 김우정<金祐靖>)이고, 신무왕<神武王>의 이복동생이다. 재위기간 동안 별다른 치적은 보이지 않지만 제방<堤防>을 수리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등 권농<勸農>에 힘썼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861년 1월에 왕이 죽자 시호<諡號>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나 공작지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