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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탈해왕릉 - 궤를 풀고 나온 아이...탈해왕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동천동 17

높이는 4.5m, 지름은 14.3m.
탈해왕릉은 1969년 8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성은 석(昔)씨, 혹은 토해(吐解)라고도 하며 제3대 유리왕의 유언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어 62세에 왕이 되었다. 왕비는 아효부인이다. 57년에 왕이 되어 80년에 죽었으며 재위 23년간 왜구와는 친교하고 백제와는 자주 다투었다.
계림을 국호로 하였으며 가야와 싸워 크게 이겼다.
죽은 뒤 경주에 있는 양정의 언덕에 장사하였다는 기록에 따라 경주 시가지의 동북방에 해당하는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다.

무덤의 외부 모습은 둥근 봉토분으로서 아무런 시설과 표식물이 없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무덤인데 능 앞에 마련된 잘 다듬은 돌은 후대에 설치한 혼유석이다.

탈해왕의 내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왜국에서 동북쪽으로 1천여리 떨어져 있는 다파나국 왕비가 잉태한 지 7년만에 큰 알 하나를 낳았는데 이는 상서럽지 못한 일이라 하여 그 알을 궤에 넣어 바다에 띄어 보냈다. 그 배가 신라땅에 와 닿아 한 노파가 열어보니 그 안에 어린 아이가 있으므로 데려다 길렀는데 궤가 바다에 떠 올때 까치가 울며 따라 왔으므로 까치 鵲자에서 鳥자를 떼어내어 昔(석)으로 성을 삼고 또한 궤를 풀고 나왔다하여 이름을 탈해라하였다 한다.

탈해는 자라서 키가 9척이나 되었고 용모가 준수하고 지식이 남달리 뛰어나 신라 2대왕 남해왕의 사위가 되었고 3대 유리왕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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