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명시 소하2동 1084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 선생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는 사당이다. 인조 8년(1630)에 2칸 초가인 선생의 집에서 비가 새므로 왕이 새집을 하사하였는데 숙종<肅宗> 19년(1693) 인조가 하사한 집터 위에 사당을 건립하여 '오리영우<梧里影宇>'라 편액하였다. 오리영우는 소하동 오리로변의 주택가에 있는 충현서원<忠賢書院> 내에 종택<宗宅>과 함께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고 앞쪽에는 내삼문<內三門>이 있어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집으로, 평면은 정방형인데 전면의 퇴칸 때문에 측면은 2칸이 되었다. 전면 창호<窓戶>는 세살분합문이고, 측면과 후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었다. 장대석<長臺石>기단과 초석은 17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세장한 부재 단면, 익고의 형태, 방화벽 등은 19세기 말의 수법이다. 구조는 앞쪽에 퇴칸이 있는 오량<五樑> 가구이며 내부에 영정이 봉안된 감실<龕室>이 있어 특이하다. 내삼문은 평삼문 형식인데 기둥 머리의 결구 수법에서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오리영우는 작은 규모의 사당이지만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사당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조선 선조<宣祖>∼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 선생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는 사당이다. 인조 8년(1630)에 2칸 초가인 선생의 집에서 비가 새므로 왕이 새집을 하사하였는데 숙종<肅宗> 19년(1693) 인조가 하사한 집터 위에 사당을 건립하여 '오리영우<梧里影宇>'라 편액하였다. 오리영우는 소하동 오리로변의 주택가에 있는 충현서원<忠賢書院> 내에 종택<宗宅>과 함께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고 앞쪽에는 내삼문<內三門>이 있어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맞배집으로, 평면은 정방형인데 전면의 퇴칸 때문에 측면은 2칸이 되었다. 전면 창호<窓戶>는 세살분합문이고, 측면과 후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었다. 장대석<長臺石>기단과 초석은 17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세장한 부재 단면, 익고의 형태, 방화벽 등은 19세기 말의 수법이다. 구조는 앞쪽에 퇴칸이 있는 오량<五樑> 가구이며 내부에 영정이 봉안된 감실<龕室>이 있어 특이하다. 내삼문은 평삼문 형식인데 기둥 머리의 결구 수법에서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오리영우는 작은 규모의 사당이지만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사당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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