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여주군 금사면 도곡리 산7
원적산<圓寂山>의 산자락 밑에서 북동쪽을 향하여 있는 이 석불좌상은 팔각대좌 위에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알맞은 신체 비례를 갖고 있다. 나발<螺髮>에 육계<肉계>는 마모되어 거의 드러나지 않으나 두툼한 코, 팽팽한 두 뺨, 어깨까지 늘어진 귀 등에서 자연스러운 부처의 모습을 느낄 수 있고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왼손을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서 2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다. 신체는 당당한 어깨에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쳤는데, 양 팔에서 형성된 두터운 계단식 옷주름은 양 무릎으로 흘러 내러 人자형의 등간격<等間隔>을 가진 도식적 주름을 하고 있다. 또한 왼쪽 어깨 위에서 대의<大衣>자락을 고리로 고정시켜 삼각형 주름을 형성하는데, 이같은 법의의 표현 수법은 9세기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3매의 화강석으로 구성된 대좌는 불상에 비하여 작은 편이다. 상대석은 4단 받침을 갖춘 복엽 연판문<複葉蓮瓣文>인데, 각 연잎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갖추고 선정인<禪定印>을 한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특이하다. 중대석은 여섯 면으로 네 면에 4등신<四等身>의 신장상<神將像>이 배치되어 있고 두 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석불좌상은 전형적인 9세기 조각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근처 여주 포초골 미륵좌상(유형문화재 제35호)이나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유형문화재 제98호)와 더불어 이 지역 조각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원적산<圓寂山>의 산자락 밑에서 북동쪽을 향하여 있는 이 석불좌상은 팔각대좌 위에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알맞은 신체 비례를 갖고 있다. 나발<螺髮>에 육계<肉계>는 마모되어 거의 드러나지 않으나 두툼한 코, 팽팽한 두 뺨, 어깨까지 늘어진 귀 등에서 자연스러운 부처의 모습을 느낄 수 있고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왼손을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서 2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다. 신체는 당당한 어깨에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쳤는데, 양 팔에서 형성된 두터운 계단식 옷주름은 양 무릎으로 흘러 내러 人자형의 등간격<等間隔>을 가진 도식적 주름을 하고 있다. 또한 왼쪽 어깨 위에서 대의<大衣>자락을 고리로 고정시켜 삼각형 주름을 형성하는데, 이같은 법의의 표현 수법은 9세기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3매의 화강석으로 구성된 대좌는 불상에 비하여 작은 편이다. 상대석은 4단 받침을 갖춘 복엽 연판문<複葉蓮瓣文>인데, 각 연잎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갖추고 선정인<禪定印>을 한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특이하다. 중대석은 여섯 면으로 네 면에 4등신<四等身>의 신장상<神將像>이 배치되어 있고 두 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석불좌상은 전형적인 9세기 조각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근처 여주 포초골 미륵좌상(유형문화재 제35호)이나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유형문화재 제98호)와 더불어 이 지역 조각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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