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386
조선 정조<正祖> 18년(1794) 5월 3일, 병조<兵曹>에서 야경<夜警>때 사용한 군호 문서<軍號 文書>(군중에서 사용하는 암호를 전달하는 문서)이다. 당시 병조시랑<侍郞>이던 윤장렬<尹長烈>이 정조에게 군호를 재가받기 위해 두 글자를 써서 올리자 왕자였던 순조<純祖>가 두 글자와 함께 군호 밑에 '가<可>'자를 쓰고 수결<手決>(이름이나 직함 아래에 도장 대신 쓰는 서명)을 놓아 재가하였다. 윤장렬은 이 군호 문서를 자손대대로 간직하고자 소족자를 만들어 보관하였고 이후 장렬의 아들 치영<致永>이 문서 아래쪽에 이 '군호'의 유래를 적어 넣었으며 장렬의 손자 만선<萬善>이 순조 21년(1821)에 다시 더 써 넣었다. 문서에는 병조의 도장 7개가 찍혀 있다. 이 군호 문서를 통하여 당시 병조에서 야경 때 사용하던 군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조선 정조<正祖> 18년(1794) 5월 3일, 병조<兵曹>에서 야경<夜警>때 사용한 군호 문서<軍號 文書>(군중에서 사용하는 암호를 전달하는 문서)이다. 당시 병조시랑<侍郞>이던 윤장렬<尹長烈>이 정조에게 군호를 재가받기 위해 두 글자를 써서 올리자 왕자였던 순조<純祖>가 두 글자와 함께 군호 밑에 '가<可>'자를 쓰고 수결<手決>(이름이나 직함 아래에 도장 대신 쓰는 서명)을 놓아 재가하였다. 윤장렬은 이 군호 문서를 자손대대로 간직하고자 소족자를 만들어 보관하였고 이후 장렬의 아들 치영<致永>이 문서 아래쪽에 이 '군호'의 유래를 적어 넣었으며 장렬의 손자 만선<萬善>이 순조 21년(1821)에 다시 더 써 넣었다. 문서에는 병조의 도장 7개가 찍혀 있다. 이 군호 문서를 통하여 당시 병조에서 야경 때 사용하던 군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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