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옥천면 신복1∼3리
이호민(1553∼163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조좌랑<吏曹佐郞>·부제학<副提學>·예조판서<禮曹判書>·좌찬성<左贊成>을 지냈으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峰>·남곽<南郭>·수와<睡窩>,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공문서를 모두 작성하고 명<明>의 원군을 출병케 하였고, 왕을 의주까지 호성한 공으로 선조<宣祖> 37년(1604)에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봉해졌다. 현재 연안이씨종친회에는 공신 책록 당시에 그려진 영정과 영정함, 교지와 교지함 등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초상화는 91㎝×163.5㎝크기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공신도 형식의 작품이다. 오사모<烏紗帽>를 쓴 정장 관복 차림으로 얼굴과 몸을 왼쪽으로 향한 전신좌안칠분면의좌상<全身左顔七分面椅坐像>이다. 쌍학과 모란 문양의 흉배와 각대는 1품 이상만 두르는 서대<犀帶>(중국 물소뿔로 만든 장식을 붙인 조선시대 정1품 벼슬의 허리띠)를 갖추고 있어 문관 종1품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다. 안면<顔面>은 가는 붓으로 이목구비와 수염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의습 처리는 굵은 묵선을 써서 윤곽선과 몇 개의 주름만 나타냈고, 옷감 무늬인 서운문<瑞雲文>은 먹의 농담으로 세밀히 처리하였다. 바닥에 깔린 붉은 색의 화려한 채전<彩氈>은 세필<細筆>을 세워서 점묘식<點描式>으로 문양을 찍어 첨모직<添毛織>임을 표현해냈다. 시호족자<諡號簇子>는 공의 사후 인조<仁祖> 13년(1635)에 내려진 것이고, 교지는 문희공익호교지(<文喜公謚號敎旨>-74㎝×102.5㎝)와 만력<萬曆> 32년(1604년) 명의 윤<尹>부인과 허<許>부인에 관한 내용으로, 두 부인의 교지는 공의 호성공신 책봉과 함께 내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정함과 교지함은 배나무에 삼베를 입히고 두껍게 옻칠을 한 것이다. 두 점 모두 여의두식 경첩(법회나 설법 때 강사가 갖는, 고사리 모양을 한 여의의 머리 모양을 본떠 만든 경첩)과 팔엽국화문 앞바탕 장식이 붙어있고, 판<板>과 판을 엮은 장식 또한 팔각국화문이다. 이 함들은 17세기 초 목공예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호민(1553∼163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조좌랑<吏曹佐郞>·부제학<副提學>·예조판서<禮曹判書>·좌찬성<左贊成>을 지냈으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峰>·남곽<南郭>·수와<睡窩>,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공문서를 모두 작성하고 명<明>의 원군을 출병케 하였고, 왕을 의주까지 호성한 공으로 선조<宣祖> 37년(1604)에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봉해졌다. 현재 연안이씨종친회에는 공신 책록 당시에 그려진 영정과 영정함, 교지와 교지함 등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초상화는 91㎝×163.5㎝크기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공신도 형식의 작품이다. 오사모<烏紗帽>를 쓴 정장 관복 차림으로 얼굴과 몸을 왼쪽으로 향한 전신좌안칠분면의좌상<全身左顔七分面椅坐像>이다. 쌍학과 모란 문양의 흉배와 각대는 1품 이상만 두르는 서대<犀帶>(중국 물소뿔로 만든 장식을 붙인 조선시대 정1품 벼슬의 허리띠)를 갖추고 있어 문관 종1품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다. 안면<顔面>은 가는 붓으로 이목구비와 수염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의습 처리는 굵은 묵선을 써서 윤곽선과 몇 개의 주름만 나타냈고, 옷감 무늬인 서운문<瑞雲文>은 먹의 농담으로 세밀히 처리하였다. 바닥에 깔린 붉은 색의 화려한 채전<彩氈>은 세필<細筆>을 세워서 점묘식<點描式>으로 문양을 찍어 첨모직<添毛織>임을 표현해냈다. 시호족자<諡號簇子>는 공의 사후 인조<仁祖> 13년(1635)에 내려진 것이고, 교지는 문희공익호교지(<文喜公謚號敎旨>-74㎝×102.5㎝)와 만력<萬曆> 32년(1604년) 명의 윤<尹>부인과 허<許>부인에 관한 내용으로, 두 부인의 교지는 공의 호성공신 책봉과 함께 내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정함과 교지함은 배나무에 삼베를 입히고 두껍게 옻칠을 한 것이다. 두 점 모두 여의두식 경첩(법회나 설법 때 강사가 갖는, 고사리 모양을 한 여의의 머리 모양을 본떠 만든 경첩)과 팔엽국화문 앞바탕 장식이 붙어있고, 판<板>과 판을 엮은 장식 또한 팔각국화문이다. 이 함들은 17세기 초 목공예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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