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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선생영정및공신록권 - 인물 연구에 도움이 되는 귀중한 사료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7

장만(1566∼1629)은 전라·함경도관찰사<觀察使>, 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을 거쳐 우찬성<右贊成>을 지낸 문신으로 자는 호고<好古>, 호는 낙서<洛西>,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써 진무공신<振武功臣>(조선 인조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공신 칭호) 1등으로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에 봉해졌다. 현재 그의 영정은 2점이 전하고 있는데, 공신도 형식의 초상화 1점과 유학 복식 차림의 초상화 1점이다. 그 중 공신 초상화는 240㎝×113㎝ 크기로, 진무공신에 오른 후 인조<仁祖>3년(1625)에 도화서<圖畵署>화원<畵員>에 의하여 그려진 것이며,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보여지는 공신도의 전형적인 예에 속하는 작품이다. 오사모<嗚紗帽>를 쓴 정장 관복으로 얼굴과 몸을 왼쪽으로 한 전신좌안칠분면의좌상<全身左顔七分面椅坐像>으로서, 쌍학 문양의 흉배<胸背>와 서대<犀帶>를 갖추고 있어 문관 종1품 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사모의 높이가 다른 공신상에 비하여 낮은 편이고, 얼굴의 세부를 가는 붓으로 그렸으며, 의습 처리는 굵은 묵선<墨線>으로 윤곽선을 긋고 먹의 농담으로 처리하여 옷주름이 없는 편이다. 화면 상단에는 '옥성부원군증익충정공만화<玉城府院君贈謚忠定公晩畵>'라고 쓰여 있으나, 충정<忠定>이라는 그의 시호가 적혀 있기 때문에 이 문장은 그의 사후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유복<儒服>차림의 초상화는 253㎝×113㎝로 학창의(<鶴창衣>: 조선시대 학자들의 평상복으로, 겨드랑이 밑에 폭을 따로 대지않고 아래가 갈라지게 만든 옷)를 입은 전신의좌상으로 앞서 살핀 그림과 비교하여 복식과 왼손에 부채를 든 모습, 호피를 깐 의자 등이 다를 뿐 얼굴 모양이나 방향은 거의 같다. 학창의의 깃은 농담 없이 검은 묵선으로만 표현하였다. 이 초상화 역시 공신 초상화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초상화와 함께 보관중인 교서<敎書>는 폭 375㎝에 길이 198㎝로 진무공신 1 등에 책록함을 명하는 것이다. 공을 비롯해 모두 32인의 공신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인물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귀중한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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