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팽성읍 객사1∼6리 117
이 건물은 조선시대<朝鮮時代> 팽성현<彭城縣>의 객사로, 원래는 작은 규모였던 것을 현종<顯宗 : 1659~1674>때 크게 중창<重창>하였고 다시 영조<英祖> 36년(1760)에 중수<重修>하고, 순조<純祖> 1년(1801)에 또 다시 중수<重修>한 것이다. 현재는 대문간채와 본채가 남아있는데, 본채는 전체 9칸 가운데 3칸은 중대청<中大廳>이고 좌·우에 동·서헌<東·西軒>이 각각 3칸씩이다. 중대청은 안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고을 수령이 한달에 두번 배례<拜禮>를 올리던 곳으로, 이곳은 굵은 원형 기둥에 초익공<初翼工>을 결구<結構>하고 지붕도 동·서헌보다 높여 건물의 격식을 높혔다. 동·서헌은 다른 지방에서 온 관리<官吏>들이 머물던 숙소로 사용되었다. 대문간채의 중앙에 1칸의 대문이 있는데 솟을 지붕으로 꾸몄다. 중대청과 대문의 지붕 용마루 양끝에는 용두<龍頭>를 놓아 관리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
[승용차]
평택에서 온양방면(45번 국도)으로 진행, 객사삼거리 부근 위치
[대중교통]
평택시내에서 안정리행 승차, 객사리삼거리에서 하차, 도보 1분 소요
이 건물은 조선시대<朝鮮時代> 팽성현<彭城縣>의 객사로, 원래는 작은 규모였던 것을 현종<顯宗 : 1659~1674>때 크게 중창<重창>하였고 다시 영조<英祖> 36년(1760)에 중수<重修>하고, 순조<純祖> 1년(1801)에 또 다시 중수<重修>한 것이다. 현재는 대문간채와 본채가 남아있는데, 본채는 전체 9칸 가운데 3칸은 중대청<中大廳>이고 좌·우에 동·서헌<東·西軒>이 각각 3칸씩이다. 중대청은 안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고을 수령이 한달에 두번 배례<拜禮>를 올리던 곳으로, 이곳은 굵은 원형 기둥에 초익공<初翼工>을 결구<結構>하고 지붕도 동·서헌보다 높여 건물의 격식을 높혔다. 동·서헌은 다른 지방에서 온 관리<官吏>들이 머물던 숙소로 사용되었다. 대문간채의 중앙에 1칸의 대문이 있는데 솟을 지붕으로 꾸몄다. 중대청과 대문의 지붕 용마루 양끝에는 용두<龍頭>를 놓아 관리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
[승용차]
평택에서 온양방면(45번 국도)으로 진행, 객사삼거리 부근 위치
[대중교통]
평택시내에서 안정리행 승차, 객사리삼거리에서 하차, 도보 1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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