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1∼2리
한확선생신도비< 韓確先生神道碑 >는 조선< 朝鮮 > 초기< 初期 > 문신이었던 삼절공 한확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신도비이다. 선생은 본관이 청주< 淸州 >며 고려< 高麗 > 시중< 侍中 > 강< 康 >의 후손으로 손창군수 영정< 永 >의 아들이다. 그의 누이가 명< 明 >나라 성조< 成祖 >의 비< 妃 >가 되자 선생은 태종< 太宗 > 17년(1417)에 진헌부사< 進獻副使 >로 명나라에 들어가 광록시< 光祿寺 > 소경< 少卿 >이 되었다. 이듬해 세종< 世宗 >이 즉위하자 고부청시승습사< 告訃請諡承襲使 >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세종 20년(1438)에는 중추원사< 中樞院使 >사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서 병조판서< 兵曹判書 > 함길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세종< 世宗 > 25년(1443)에 판중추원사< 判中樞院使 >로 사은사< 謝恩使 >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단종< 端宗 > 원년(1453) 좌찬성으로 계유정란< 癸酉靖難 >에 수양대군< 首陽大君 >에게 가담하여 정난공신 1등이 되었으며 서원부원군< 西原府院君 >에 책봉된 후 다시 사은사< 謝恩使 >로 명나라 연경에 가서 왕위찬탈을 양위로 명분을 세워 설득하고 귀국 도중에 사하포< 沙河浦 >에서 객사< 客死 >하니 세조< 世祖 > 문묘에 함께 봉안되었다.
한확선생신도비< 韓確先生神道碑 >는 조선< 朝鮮 > 초기< 初期 > 문신이었던 삼절공 한확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신도비이다. 선생은 본관이 청주< 淸州 >며 고려< 高麗 > 시중< 侍中 > 강< 康 >의 후손으로 손창군수 영정< 永 >의 아들이다. 그의 누이가 명< 明 >나라 성조< 成祖 >의 비< 妃 >가 되자 선생은 태종< 太宗 > 17년(1417)에 진헌부사< 進獻副使 >로 명나라에 들어가 광록시< 光祿寺 > 소경< 少卿 >이 되었다. 이듬해 세종< 世宗 >이 즉위하자 고부청시승습사< 告訃請諡承襲使 >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세종 20년(1438)에는 중추원사< 中樞院使 >사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서 병조판서< 兵曹判書 > 함길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세종< 世宗 > 25년(1443)에 판중추원사< 判中樞院使 >로 사은사< 謝恩使 >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단종< 端宗 > 원년(1453) 좌찬성으로 계유정란< 癸酉靖難 >에 수양대군< 首陽大君 >에게 가담하여 정난공신 1등이 되었으며 서원부원군< 西原府院君 >에 책봉된 후 다시 사은사< 謝恩使 >로 명나라 연경에 가서 왕위찬탈을 양위로 명분을 세워 설득하고 귀국 도중에 사하포< 沙河浦 >에서 객사< 客死 >하니 세조< 世祖 > 문묘에 함께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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