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남구 성암동
이곳은 신라때부터 왜구 방어의 요충지였다.
조선 초기에 이곳에 설치된 수군만호(水軍萬戶) 의 진영이 세조때 경상좌도수군절도사의 진영으로 바뀌어 선조때 동래로 옮겨질 때까지 130여년간 중요한 방어기지였다.
조선 후기에는 전선(戰船)을 만드는 선소가 있었다.
현존하는 성터는 조선 초기에 쌓은 것으로, 둘레가 4,227척의 큰 규모이고, 성밖으로 해자(垓字)를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다.
북문과 동문의 형태도 있으며, 성벽의 축조방법이 조선 초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성터 기단부의 돌 위에 큰 돌덩이를 세워 쌓는 특이한 방법은 학술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 다.
[대중교통]
울산공항에서
[19, 24, 124, 126]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3, 14, 104, 13, 15, 4, 17, 25, 103, 35]번을 타고 [변전소앞]에서 하차
울산역에서
[102, 305, 314, 317. 327]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3, 14, 104, 13, 15, 4, 17, 25, 103, 35]번을 타고 [변전소앞]에서 하차
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서
[12, 17]번을 타고 [변전소앞]에서 하차
이곳은 신라때부터 왜구 방어의 요충지였다.
조선 초기에 이곳에 설치된 수군만호(水軍萬戶) 의 진영이 세조때 경상좌도수군절도사의 진영으로 바뀌어 선조때 동래로 옮겨질 때까지 130여년간 중요한 방어기지였다.
조선 후기에는 전선(戰船)을 만드는 선소가 있었다.
현존하는 성터는 조선 초기에 쌓은 것으로, 둘레가 4,227척의 큰 규모이고, 성밖으로 해자(垓字)를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다.
북문과 동문의 형태도 있으며, 성벽의 축조방법이 조선 초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성터 기단부의 돌 위에 큰 돌덩이를 세워 쌓는 특이한 방법은 학술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 다.
[대중교통]
울산공항에서
[19, 24, 124, 126]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3, 14, 104, 13, 15, 4, 17, 25, 103, 35]번을 타고 [변전소앞]에서 하차
울산역에서
[102, 305, 314, 317. 327]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3, 14, 104, 13, 15, 4, 17, 25, 103, 35]번을 타고 [변전소앞]에서 하차
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서
[12, 17]번을 타고 [변전소앞]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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