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의왕시 왕곡동 43
김유(1653∼1719)는 황해도관찰사<觀察使>와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식<埴>, 호는 검재<儉齋>,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남계 박세채<南溪 朴世采>의 문하로 찬수낭관<簒修郎官>(낭관 : 조선시대 육조의 각 관아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정랑과 좌랑을 총칭하는 용어)때『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증보하였다. 이 초상화는 오사모<烏紗帽>에 녹포단령<綠袍團領>(단령 : 조선시대 관리의 평소 집무복으로, 신랑의 혼례복으로 입기도 했다)의 정장 관복을 입고 호랑이 가죽이 깔린 의자에 앉은 전신좌안칠분교의좌상<全身左顔七分交椅坐像>이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는 '검재김선생화상육십사세시사<儉齋金先生畵像六十四歲時寫>'라고 적혀 있어 그가 64세인 숙종<肅宗> 42년(1716)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모의 높이는 당시의 모제<帽制>를 반영하여 상당히 높고, 공수<拱手>(공경하는 뜻으로 두손을 마주 잡는 것)도 각대<角帶>보다 아래쪽에 놓여 있으며, 족좌대<足座臺>위의 두 발 사이에는 호랑이 얼굴이 정면으로 나타나 있다. 얼굴 처리를 살펴보면, 안면의 외곽선을 갈색선으로 그리고, 움푹 들어간 부위에는 갈색선을 조심스럽게 겹쳐 그어 붓질이 몰리는 곳이 어둡게 되었다. 수염은 검은 올과 흰 올을 정성스럽게 그려 넣어 사실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이 같은 사실성의 추구는 안면의 검버섯까지도 살 속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보이는 기법과 단령의 자연스런 의습선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8세기 전기의 공신도상 형식을 따른 문신상의 한 전형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김유(1653∼1719)는 황해도관찰사<觀察使>와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식<埴>, 호는 검재<儉齋>,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남계 박세채<南溪 朴世采>의 문하로 찬수낭관<簒修郎官>(낭관 : 조선시대 육조의 각 관아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정랑과 좌랑을 총칭하는 용어)때『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증보하였다. 이 초상화는 오사모<烏紗帽>에 녹포단령<綠袍團領>(단령 : 조선시대 관리의 평소 집무복으로, 신랑의 혼례복으로 입기도 했다)의 정장 관복을 입고 호랑이 가죽이 깔린 의자에 앉은 전신좌안칠분교의좌상<全身左顔七分交椅坐像>이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는 '검재김선생화상육십사세시사<儉齋金先生畵像六十四歲時寫>'라고 적혀 있어 그가 64세인 숙종<肅宗> 42년(1716)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모의 높이는 당시의 모제<帽制>를 반영하여 상당히 높고, 공수<拱手>(공경하는 뜻으로 두손을 마주 잡는 것)도 각대<角帶>보다 아래쪽에 놓여 있으며, 족좌대<足座臺>위의 두 발 사이에는 호랑이 얼굴이 정면으로 나타나 있다. 얼굴 처리를 살펴보면, 안면의 외곽선을 갈색선으로 그리고, 움푹 들어간 부위에는 갈색선을 조심스럽게 겹쳐 그어 붓질이 몰리는 곳이 어둡게 되었다. 수염은 검은 올과 흰 올을 정성스럽게 그려 넣어 사실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이 같은 사실성의 추구는 안면의 검버섯까지도 살 속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보이는 기법과 단령의 자연스런 의습선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8세기 전기의 공신도상 형식을 따른 문신상의 한 전형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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