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은 삼국시대에 토성< 土城 >으로 축조< 築造 >되었던 것을 조선시대에 현감< 縣監 > 이담룡< 李聃龍 >이 석축으로 축성하였다. 원래 이 읍성은 둘레가 약 1,000m, 높이가 4m나 되었고, 성내에 4개의 우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성을 쌓았던 큰 돌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남문터에 복원한 영화루와 그 앞의 해자. 공사 진행중.
성은 중국식 방형축성법< 方形築城法 >으로 전국의 중요한 읍성이 개축되던 14∼15세기의 규식화된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옛 성벽을 그대로 담장으로 삼은 주택
성안마을 진입로
북쪽문에 남아있는 언양성벽
복원예정 조감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