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132
현재 비는 북한산성 내 대성암(大成庵) 아래에 있는데, 원래 금위영은 소동문(小東門) 안에 있었으나 그 지세가 높아 비, 바람이 몰아치면 무너 지기 쉬우므로 보국사(輔國寺) 아래로 옮기게 되었다. 금위영 이건기비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비의 재료는 화강암으로 뒷면은 땅에 묻혀 있고, 옥개(屋蓋)는 장대석 (長臺石)에 앞편에만 낙수면(落水面)을 새겼다. 즉 와비(臥碑)의 형식으로 비문의 끝부분에 "을미즉 대명숭정 갑신후 칠십이년야 도제조이이명 지(乙未卽 大明崇楨 甲申後 七十二年也 都提調李餌命 識)"이란 명문으로 보아 숙종 41년 (1715)에 도제조 이이명이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문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숙종 37년 4월에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 (御營廳), 금위영(禁衛營)으로 하여금 백제의 고성인 북한산성을 나누어 개축하게 하고 각 군영을 설치하도록 하여 군량을 저장하고 유사시에 대응 하게 하라고 하니 그 해 10월에 성곽의 보수가 완료되었다.
금위영(禁衛營)은 능암 동남쪽에서 보현봉 아래까지 2,821보(步)를 쌓았다. 1,065개의 살밭이와 2개의 성문(대성문, 소동문)이 있는데 성문 위에 누각을 설치하였다. 이외에 장대(將臺), 방실(房室), 성곽등을 축조하였다.
태고(太古)외 4개 사찰이 성내에 있으며 군영의 막사와 창고 90여간은 3월에, 4개 사찰중 하나인 보국사로 옮겼다. 공사는 8월에 준공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승용차]
서울 구파발에서 의정부쪽으로 가다가 북한산성입구로 들어간다.
[대중교통]
구파발에서 북한산성행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에서 내린다.
현재 비는 북한산성 내 대성암(大成庵) 아래에 있는데, 원래 금위영은 소동문(小東門) 안에 있었으나 그 지세가 높아 비, 바람이 몰아치면 무너 지기 쉬우므로 보국사(輔國寺) 아래로 옮기게 되었다. 금위영 이건기비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비의 재료는 화강암으로 뒷면은 땅에 묻혀 있고, 옥개(屋蓋)는 장대석 (長臺石)에 앞편에만 낙수면(落水面)을 새겼다. 즉 와비(臥碑)의 형식으로 비문의 끝부분에 "을미즉 대명숭정 갑신후 칠십이년야 도제조이이명 지(乙未卽 大明崇楨 甲申後 七十二年也 都提調李餌命 識)"이란 명문으로 보아 숙종 41년 (1715)에 도제조 이이명이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문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숙종 37년 4월에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 (御營廳), 금위영(禁衛營)으로 하여금 백제의 고성인 북한산성을 나누어 개축하게 하고 각 군영을 설치하도록 하여 군량을 저장하고 유사시에 대응 하게 하라고 하니 그 해 10월에 성곽의 보수가 완료되었다.
금위영(禁衛營)은 능암 동남쪽에서 보현봉 아래까지 2,821보(步)를 쌓았다. 1,065개의 살밭이와 2개의 성문(대성문, 소동문)이 있는데 성문 위에 누각을 설치하였다. 이외에 장대(將臺), 방실(房室), 성곽등을 축조하였다.
태고(太古)외 4개 사찰이 성내에 있으며 군영의 막사와 창고 90여간은 3월에, 4개 사찰중 하나인 보국사로 옮겼다. 공사는 8월에 준공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승용차]
서울 구파발에서 의정부쪽으로 가다가 북한산성입구로 들어간다.
[대중교통]
구파발에서 북한산성행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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