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명시 소하동 1086
이원익(1547∼1634)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호성공신<扈聖功臣>(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가는 데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내린 공신 칭호)으로 호조·이조판서<判書>와 영의정까지 역임한 문신이다.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 초상화의 크기는 150㎝×70㎝로, 오사모<烏紗帽>에 정장 관복을 입고 호피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우안교의좌상<全身右顔交椅坐像>이다. 전체적인 형식에 있어서 공신도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호성공신상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가슴에 부착된 단학<單鶴>흉배는 이 초상화가 당하관<堂下官>재직시에 그려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가 호성공신 책록을 받기 전인 선조<宣祖> 13년(1580) 이전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공의 모습은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오른손엔 부채를, 왼손에 대를 잡고 있는데, 손의 형태가 미숙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의 처리는 음영 효과가 들어가 있으며, 수염·눈썹·뺨 등은 엷은 묵<墨>으로 처리한 뒤에 묵선<墨線>으로 다시 덧칠하고 있다. 눈은 금니<金泥>(금가루에 아교를 갠 것으로 경전을 베껴 쓸 때 먹 대신 사용하여 장엄함을 나타낸다)를 칠하지 않았나 생각될 만큼 눈동자 주위에 금니가 남아 있다. 이원익상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대부분이 왼쪽으로 얼굴을 돌린데 비하여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원익(1547∼1634)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호성공신<扈聖功臣>(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가는 데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내린 공신 칭호)으로 호조·이조판서<判書>와 영의정까지 역임한 문신이다.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 초상화의 크기는 150㎝×70㎝로, 오사모<烏紗帽>에 정장 관복을 입고 호피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우안교의좌상<全身右顔交椅坐像>이다. 전체적인 형식에 있어서 공신도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호성공신상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가슴에 부착된 단학<單鶴>흉배는 이 초상화가 당하관<堂下官>재직시에 그려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가 호성공신 책록을 받기 전인 선조<宣祖> 13년(1580) 이전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공의 모습은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오른손엔 부채를, 왼손에 대를 잡고 있는데, 손의 형태가 미숙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의 처리는 음영 효과가 들어가 있으며, 수염·눈썹·뺨 등은 엷은 묵<墨>으로 처리한 뒤에 묵선<墨線>으로 다시 덧칠하고 있다. 눈은 금니<金泥>(금가루에 아교를 갠 것으로 경전을 베껴 쓸 때 먹 대신 사용하여 장엄함을 나타낸다)를 칠하지 않았나 생각될 만큼 눈동자 주위에 금니가 남아 있다. 이원익상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대부분이 왼쪽으로 얼굴을 돌린데 비하여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