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역북동 산3-4
채제공(1720∼1799)선생은 조선< 朝鮮 > 영·정조< 英正祖 >간의 문신< 文臣 >으로서 자는 백규< 伯規 >, 호는 번암< 樊巖 >, 시호는 문숙< 文肅 >이다. 영조< 英祖 > 19년(1743)에 문과에 급제하고, 영조 29년(1753)에 호서< 湖西 > 암행어사< 暗行御史 >를 지냈으며, 도승지< 都承旨 >, 병조판서< 兵曺判書 >, 호조판서< 戶曹判書 >, 평안도< 平安道 > 관찰사< 觀察使 >를 거쳐 우의정< 右議政 >, 좌의정< 左議政 >, 영의정< 領議政 >을 지냈다. 열성지장< 列聖誌狀 >, 국조보감< 國朝寶鑑 >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충실히 왕을 보필했으며, 10여 년 재상으로 있는 동안 천주교 박해가 확대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후에 관직을 추탈당했다가 순조 23년(1823)에 신원< 伸寃 >되었다. 이 비는 정조가 어제어필< 御製御筆 >로써 선생의 별세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생전의 공적을 찬양한 뇌문< 文 >을 비에 새겨 정조 23년(1799)에 건립한 것이다.
채제공(1720∼1799)선생은 조선< 朝鮮 > 영·정조< 英正祖 >간의 문신< 文臣 >으로서 자는 백규< 伯規 >, 호는 번암< 樊巖 >, 시호는 문숙< 文肅 >이다. 영조< 英祖 > 19년(1743)에 문과에 급제하고, 영조 29년(1753)에 호서< 湖西 > 암행어사< 暗行御史 >를 지냈으며, 도승지< 都承旨 >, 병조판서< 兵曺判書 >, 호조판서< 戶曹判書 >, 평안도< 平安道 > 관찰사< 觀察使 >를 거쳐 우의정< 右議政 >, 좌의정< 左議政 >, 영의정< 領議政 >을 지냈다. 열성지장< 列聖誌狀 >, 국조보감< 國朝寶鑑 >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충실히 왕을 보필했으며, 10여 년 재상으로 있는 동안 천주교 박해가 확대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후에 관직을 추탈당했다가 순조 23년(1823)에 신원< 伸寃 >되었다. 이 비는 정조가 어제어필< 御製御筆 >로써 선생의 별세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생전의 공적을 찬양한 뇌문< 文 >을 비에 새겨 정조 23년(1799)에 건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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