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1∼3리 304
원증국사(1301∼1382)는 고려< 高麗 > 말기< 末期 >의 고승< 高僧 > 보우< 普愚 >로 호< 號 >는 태고< 太古 >, 시호< 諡號 >는 원증< 圓證 >, 탑호< 塔號 >는 보월승공< 寶月昇空 >이다. 국사는 13세에 회암사< 檜巖寺 > 광지선사< 廣智禪師 >에 의해 중이 되었다. 충숙왕< 忠肅王 > 12년(1325)에 선과< 選科 >에 급제했으나 명리< 名利 >를 버리고 감로사< 甘露寺 >에서 고행< 苦行 >하였으며 삼각산< 三角山 > 중흥사< 重興寺 > 동봉< 東峰 >에 절을 짓고 태고사< 太古寺 >라 이름하였다. 충목왕< 忠穆王 > 2년(1346)에 원< 元 >나라에 가서 청공< 淸珙 >의 법< 法 >을 이어 받아 임제종< 臨濟宗 >의 19대 법손< 法孫 >이 되었다. 충목왕< 忠穆王 > 4년(1348)에 귀국하여 소설암< 小雪庵 >에서 수도를 하고 왕사< 王師 >, 국사< 國師 >가 되었으며 소설암에서 입적< 入寂 >하였다. 석종은 국사의 묘탑< 墓塔 >으로서 화강암< 花崗岩 >에서 건조하였으며 탑신< 塔身 >과 탑정< 塔頂 >, 대석< 臺石 >으로 구분된다. 탑신은 표면에 아무 조각이 없고, 상하는 수평을 이루었다. 탑정에는 화염문< 火焰紋 >을 조각한 낮은 보주< 寶珠 >가 얹혀 있다. 대석은 1매석< 枚石 >으로 가로·세로 각각 1.1m로 탑신과 접하는 곳에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전체높이 2.75m이다.
원증국사(1301∼1382)는 고려< 高麗 > 말기< 末期 >의 고승< 高僧 > 보우< 普愚 >로 호< 號 >는 태고< 太古 >, 시호< 諡號 >는 원증< 圓證 >, 탑호< 塔號 >는 보월승공< 寶月昇空 >이다. 국사는 13세에 회암사< 檜巖寺 > 광지선사< 廣智禪師 >에 의해 중이 되었다. 충숙왕< 忠肅王 > 12년(1325)에 선과< 選科 >에 급제했으나 명리< 名利 >를 버리고 감로사< 甘露寺 >에서 고행< 苦行 >하였으며 삼각산< 三角山 > 중흥사< 重興寺 > 동봉< 東峰 >에 절을 짓고 태고사< 太古寺 >라 이름하였다. 충목왕< 忠穆王 > 2년(1346)에 원< 元 >나라에 가서 청공< 淸珙 >의 법< 法 >을 이어 받아 임제종< 臨濟宗 >의 19대 법손< 法孫 >이 되었다. 충목왕< 忠穆王 > 4년(1348)에 귀국하여 소설암< 小雪庵 >에서 수도를 하고 왕사< 王師 >, 국사< 國師 >가 되었으며 소설암에서 입적< 入寂 >하였다. 석종은 국사의 묘탑< 墓塔 >으로서 화강암< 花崗岩 >에서 건조하였으며 탑신< 塔身 >과 탑정< 塔頂 >, 대석< 臺石 >으로 구분된다. 탑신은 표면에 아무 조각이 없고, 상하는 수평을 이루었다. 탑정에는 화염문< 火焰紋 >을 조각한 낮은 보주< 寶珠 >가 얹혀 있다. 대석은 1매석< 枚石 >으로 가로·세로 각각 1.1m로 탑신과 접하는 곳에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전체높이 2.7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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