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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서원 - 이덕형, 조경 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 165

이 서원은 이덕형< 李德馨 > 선생< 先生 >과 조경< 趙絅 > 선생< 先生 >의 덕< 德 >을 추모< 追慕 >하기 위하여 조선< 朝鮮 > 숙종< 肅宗 > 17년(1691) 건립하였으며 숙종 18년(1692) 사액< 賜額 >되었다. 한음< 漢陰 > 이덕형(1561∼1613) 선생은 선조< 宣祖 > 13년(1580) 문과< 文科 >에 급제< 及第 >한 후 선조 25년(1592) 예조참의< 禮曹參議 >에 올라 대제학< 大提學 >을 겸임했고 임진왜란< 壬辰倭亂 >이 일어나자 일본< 日本 > 사신< 使臣 > 겐소< 玄蘇 > 등과 회담하고 대의< 大義 >로서 그들을 공박하는 한편 명< 明 >나라에 건너가 지원< 支援 > 출병을 성공시켰다. 병조판서< 兵曹判書 >, 우의정< 右議政 >, 좌의정< 左議政 > 등을 거쳐 선조 35년(1602) 영의정< 領議政 >에 올랐다. 광해군< 光海君 > 5년(1613) 영창대군< 永昌大君 >의 처형< 處刑 >과 폐모론< 廢母論 >을 반대하다 삭직< 削職 >되어 양근< 楊根 >에서 죽었다. 용주< 龍洲 > 조경(1586∼1669) 선생은 광해군 4년(1612) 사마시< 司馬試 >에 합격하였고, 인조< 仁祖 > 4년(1626) 친시< 親試 >에 장원< 壯元 >급제한 후 이조정랑< 吏曹正郞 > 등을 지냈으며 병자호란< 丙子胡亂 >(1636) 때 사간< 司諫 >으로 척화< 斥和 >를 주장하였고 후에 대제학< 大提학 >, 예조판서< 禮曹判書 >를 거쳐 이조판서< 吏曹判書 >가 되어 이도< 吏道 >를 쇄신, 관리등용에 공정을 기했고, 효종< 孝宗 > 9년(1658) 기로소< 耆老所 >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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