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 백운동 623-37
광주의 특산물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 진다리붓이다. 진다리는 백운동의 옛지명으로 진다리의 동쪽을 난지실이라 불렀다. 진다리붓은 안종선씨의 조부가 이곳에 정착하여 붓을 만들면서부터 유명해졌다고 한다. 현 기능보유자 안종선은 원래 보성군 문덕면에서 살던 안재환의 손자인데 안재환은 어려서부터 붓을 잘 만들었으나 문중에서 공장<工匠>에 종사하는 것을 반대하여 21세때 만주로 떠나가 붓만들기를 계속하였다. 1930년무렵 안재환이 진다리로 정착하여 붓 이름을 「진다리붓」이라 하였다. 안재환의 아들 규상(圭相)도 가업을 이어받았으며 현재 4대째 이곳에서 붓을 만들면서 진다리가 붓의 고장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안재환→규상→종선→명환 일가의 붓만들기 과정은 다음과 같다. 붓의 생명인 털은 첨<尖>, 제<濟>, 원<圓>, 건<健>의 네가지 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는 끝이 뾰족하여야 하고, 가지런해야 하며, 털의 모듬은 원형을 이루고, 힘이 있어 한획을 긋고 난 뒤에 붓털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족제비 꼬리털인 황모<黃毛>와 청모<靑毛>, 장모<獐毛>를 많이 쓰는데 안종선은 족제비 꼬리털과 양털을 주로 사용한다. 대<竹>는 시누대, 마디대, 오죽<烏竹>을 쓰며, 겨울에 대를 사서 황토흙과 쌀겨를 섞어서 물에 탄 뒤 짚으로 여러번 문질러 햇볕에 2∼3개월 말려서 한토막씩 자른 다음 건조한 곳에 저장해 두고 쓴다. 진다리 붓이 이름나게 되자, 진다리에서 붓만드는 이가 늘어났으나 안종선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 안종선은 전국관광민예품전에서 십여차례 수상한 바 있다.
광주의 특산물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 진다리붓이다. 진다리는 백운동의 옛지명으로 진다리의 동쪽을 난지실이라 불렀다. 진다리붓은 안종선씨의 조부가 이곳에 정착하여 붓을 만들면서부터 유명해졌다고 한다. 현 기능보유자 안종선은 원래 보성군 문덕면에서 살던 안재환의 손자인데 안재환은 어려서부터 붓을 잘 만들었으나 문중에서 공장<工匠>에 종사하는 것을 반대하여 21세때 만주로 떠나가 붓만들기를 계속하였다. 1930년무렵 안재환이 진다리로 정착하여 붓 이름을 「진다리붓」이라 하였다. 안재환의 아들 규상(圭相)도 가업을 이어받았으며 현재 4대째 이곳에서 붓을 만들면서 진다리가 붓의 고장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안재환→규상→종선→명환 일가의 붓만들기 과정은 다음과 같다. 붓의 생명인 털은 첨<尖>, 제<濟>, 원<圓>, 건<健>의 네가지 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는 끝이 뾰족하여야 하고, 가지런해야 하며, 털의 모듬은 원형을 이루고, 힘이 있어 한획을 긋고 난 뒤에 붓털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족제비 꼬리털인 황모<黃毛>와 청모<靑毛>, 장모<獐毛>를 많이 쓰는데 안종선은 족제비 꼬리털과 양털을 주로 사용한다. 대<竹>는 시누대, 마디대, 오죽<烏竹>을 쓰며, 겨울에 대를 사서 황토흙과 쌀겨를 섞어서 물에 탄 뒤 짚으로 여러번 문질러 햇볕에 2∼3개월 말려서 한토막씩 자른 다음 건조한 곳에 저장해 두고 쓴다. 진다리 붓이 이름나게 되자, 진다리에서 붓만드는 이가 늘어났으나 안종선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 안종선은 전국관광민예품전에서 십여차례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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