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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평거동고려고분군 - 6기의 고려방형분 진주평거동고려고분군

by 넥스루비 2007. 8. 7.
진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국도 북쪽의 평거동 석갑산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고분군은 호석에 기념각명이 새겨진 있는 6기의 고려방형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무덤의 봉토의 밑 부분을 지대석, 우주와 면석 그 위에 갑석을 얹어 마치 석탑의 기단이나 탑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라 말기의 방형분 양식인 경주 구정리의 방형분 양식에서 출발하여 세부를 고려양식화한 것이다. 거창의 벽화고분이나 경기지방의 조선 초기 방형분도 같은 형식으로 그 내부는 거창 벽화고분의 예로 보아 상사모양으로 짜여진 석실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고분의 크기와 연대, 그리고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호분 높이 1.5m, 너비 3m×3m, 명문에 "元豊 二年十月一月 大相丁悅之墓"라고 쓰여 있어 시기(1079)로 보아 가장 앞선다. 2호분은 높이 1.3m, 너비 3.3m×2.8m. 명문은 세로로 여러 줄인데 그 내용으로 보아 세운 시기는 隆興 3년(1165) 乙酉 2월이며 丁允燁의 墓이다. 3호분은 높이 1.5m, 너비 6m×6m. 호석의 갑석 네 귀에 三頭花文이 仰花式으로 음각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圭形石碑가 있다. 비문은 "丁公允宗之墓"라 적혀 있는데, 윤종은 윤엽의 동생으로 이 묘는 정면 중앙부가 약 1.6m 앞으로 돌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부에 입구같은 구조가 있는 듯하다. 4호분 높이 1.5m, 너비 2.7m×2.7m 명문은 "嘉定八年 丁彦鎭墓" 외에는 판독할 수 없다.(1215) 5호분은 높이 2m, 남북너비 3m, 동서너비 4.8m 명문은 동벽에 "丁亥 十二月十日 大相丁堉葬"이란 문구가, 남벽에는 " 令夫人鄭氏墓"란 문구가 각각 새겨져 있으며 그 밖의 각 면에는 梵字가 5자씩 새겨져 있다.(1107년) 6호분 높이 1.27m, 너비 13.74m×13.74m. 명문은 "紹定元年 丁良墓"라 새겨져 가장 늦은 시기(122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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