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자총통은 1984년 3월 8일 경남 거제도 신현읍 고현리 고현만에서 김종태씨가 수중 준설작업중 발견한 매장문화재이다. 이 총통은 有筒式 대형 화기중 천자총통(天字銃筒)에서 세 번째로 그 제원의 차를 두는 중화기의 일종이며 유전되는 실물에 따르면 天字와 地字銃筒과 같이 현저한 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地字와 비교컨대 근소한 차이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 총통을 처음 만든 것은 태종조였지만 그후 세종의 화기개발정책에 힘입어 同王 26년(1444) 화포제도를 논의할 즈음 그 시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즉 화약은 많이 소비하고도 그 중량이 무거울 뿐만 아니라 사거리도 황자총통(黃字銃筒)에 미치지 못하니 모두 깨뜨려 버리려 하였지만 이미 주조된 물량이 많은 까닭에 일시 중시하였다가 그 이듬해부터 전체적인 개발연구에 힘입어 재정비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 후 이 총통에 대해 임진·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장군이 12척의 전선으로 적선 133척을 격파한 嗚梁大捷에서도 크게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난중일기 丁酉(1597)년 9월 16일條에 의하면 "이른 아침 ....나는 노를 바삐 저어 앞으로 돌진하여 地字, 玄字등 각종 총통을 마구쏘니 탄환은 폭풍우같이 쏟아지고.....중략....일제히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쫓아 들어가 地字, 玄字大砲를 쏘니 그 소리가 산천을 뒤 흔들었다."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 그 화력의 위력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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