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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대웅전후불탱화 - 조선 후기 불화로서 독특한 음영법을 구사한 후불탱화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화성군 태안읍 송산리 188

조선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사<陵寺>로 중창한 용주사의 대웅전에 후불탱화(불상 뒤에 모셔두는 불화)로 봉안되어 있는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1745∼?)가 그렸다고 구전되어온 것이다. 정조 14년(1790)에 전국 각지에서 각 분야별로 이름난 명장<名匠>들을 불러모았는데『본사제반서화조작등제인방어<本寺諸般書畵造作等諸人芳御>』에는 '대웅전보탑불탱삼세여래체화원정풍현감김홍도<大雄殿寶榻佛幀三世如來體畵員廷豊縣監金弘道>'라고 하여 이 후불탱화가 당시 연풍현감인 김홍도의 작품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밑단에는 일반적인 불화의 형식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화기<畵記>가 적혀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양식적으로도 김홍도의 화풍과 차이가 커 김홍도의 진작<眞作>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그림은 길이 320㎝, 폭 270㎝ 크기의 화면을 상하 2단으로 나누어 상단 중앙에 현재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과거불인 약사불, 우측에 미래불인 아미타불의 삼세불을 모시고 그 주변과 하단에는 10대 보살,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나한(석가의 열반 후, 미륵불이 올 때까지 불법 수호의 사명을 위임받은 성자들)들, 사천왕 등을 배치하여 일반적인 석가삼세불화의 특징인 군집도 형식군<群集圖 形式>을 취하고 있다. 또한 각 존상<尊像>들의 얼굴은 모두 중앙의 삼세불을 향하여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어 원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채색은 삼세불의 법의<法衣>와 석가의 광배(부처나 보살의 머리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조형화한 것으로 두광과 신광이 있다)에 홍색을 칠하고 대좌(부처·보살·천인·승려 등이 앉거나 서는 자리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불상을 안치한다)는 청연화<靑蓮花>로 표현해 청홍<靑紅>의 대비를 보인다. 인물들의 얼굴과 드러난 신체 부분에는 갈색빛이 감도는 살색을 썼는데, 코를 비롯한 앞으로 나온 부분은 백색으로 처리했고, 두광에는 어두운 녹색을, 기타 부분에는 간간이 흑색과 백색을 섞어 썼다. 필선<筆線>은 비교적 딱딱한 편이나, 모든 존상의 얼굴과 손에 서양화의 음영법<陰影法>을 구사했 는데, 이렇듯 조선 후기 불화로서 독특한 음영법을 구사한 경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보이는 특징으로 주로 이 시기에 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화파<畵派>의 작품들에 보이는 표현수법이다. 또한 용주사 대웅전에도 똑같은 수법으로 그려진 칠성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따라서 이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가 그렸던 원래의 후불탱화가 아니라 조선 말에 이를 모본삼아 다른 화승<畵僧>이 새로 제작한 그림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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