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군 태안읍 송산리 188
조선 정조<正祖> 19년(1795)에 왕이 직접 내린 불교식 가사<歌辭>이다. 필사본이며, 원래의 서명은『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揭>』이다. 어제<御製>는 임금이 지었다는 뜻이고, 게<揭>는 불교의 덕을 찬양하는 글을 뜻한다.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는 '화산의 용주사에 부처를 모시고 복을 기도하는 글 '이라는 뜻이다. 정조 13년 왕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현재 서울시 청량리 일대)에서 화성의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고, 용주사를 건립하여 아버지의 명복을 빌도록 하였다. 이 책은 바로 이 때 용주사에서 내린 것이다. 이 책은 전체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글을 짓는 정조의 서문<序文>이 있고 불교가사는 초서<初序>·정종<正宗>·결게<結偈>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초서는 1조, 정종은 7조, 결게는 2조로 나누어 서술되고 있다. 각 조는 다섯 글자를 하나의 구<句>로 하여 4구로 되어 있고, 오언사구<五言四句>각 구절에 대해 작은 글씨로 해석설명한 글이 붙어 있다. 용주사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수사본(손으로 베껴쓴 책) 외에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규장각도서번호 9988, 10080 2종)가 소장되어 있다. 이 규장각 소장본은 태백산 사고, 적성산 사고, 오대산 사고 등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서 용주사 소장본과 약간 다르다. 규장각 소장본은 책이 아니라 31폭의 첩<帖>(긴 종이를 접어서 책처럼 꾸며 한 장씩 낱장으로 넘겨서 보게 한 것)으로서 음서<陰書>로 되어 있고, 글씨체도 다르게 보이며(용주사본이 정조의 글씨인지 정밀 조사가 요구된다), 한 행의 글자 수도 다르고, 초서·정종·결게 등의 표현이 나타나 있다.
조선 정조<正祖> 19년(1795)에 왕이 직접 내린 불교식 가사<歌辭>이다. 필사본이며, 원래의 서명은『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揭>』이다. 어제<御製>는 임금이 지었다는 뜻이고, 게<揭>는 불교의 덕을 찬양하는 글을 뜻한다.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는 '화산의 용주사에 부처를 모시고 복을 기도하는 글 '이라는 뜻이다. 정조 13년 왕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현재 서울시 청량리 일대)에서 화성의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고, 용주사를 건립하여 아버지의 명복을 빌도록 하였다. 이 책은 바로 이 때 용주사에서 내린 것이다. 이 책은 전체가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글을 짓는 정조의 서문<序文>이 있고 불교가사는 초서<初序>·정종<正宗>·결게<結偈>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초서는 1조, 정종은 7조, 결게는 2조로 나누어 서술되고 있다. 각 조는 다섯 글자를 하나의 구<句>로 하여 4구로 되어 있고, 오언사구<五言四句>각 구절에 대해 작은 글씨로 해석설명한 글이 붙어 있다. 용주사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수사본(손으로 베껴쓴 책) 외에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규장각도서번호 9988, 10080 2종)가 소장되어 있다. 이 규장각 소장본은 태백산 사고, 적성산 사고, 오대산 사고 등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서 용주사 소장본과 약간 다르다. 규장각 소장본은 책이 아니라 31폭의 첩<帖>(긴 종이를 접어서 책처럼 꾸며 한 장씩 낱장으로 넘겨서 보게 한 것)으로서 음서<陰書>로 되어 있고, 글씨체도 다르게 보이며(용주사본이 정조의 글씨인지 정밀 조사가 요구된다), 한 행의 글자 수도 다르고, 초서·정종·결게 등의 표현이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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