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군 중부면 400-1
조선< 朝鮮 > 인조< 仁祖 > 2년(1624) 남한산성< 南漢山城 >을 축성할 때 건립한 것으로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 武術 >을 연마하던 곳이며 이곳에서 무예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한양< 漢陽 >으로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당초에는 연무당< 演武堂 >이라 부르던 것을 숙종< 肅宗 >때에 수어사< 守禦使 > 김재호< 金在好 >로 하여금 개수< 改修 >하게 하고 연병관< 練兵館 >이라 쓴 편액< 扁額 >을 내리었다. 정조< 正祖 > 때에는 이를 수어영< 守禦營 >이라 개칭하였으나 그 뒤에도 통칭 연병관< 練兵館 > 또는 연무관< 練武館 >이라 부르고 있다. 이 건물은 초익공계< 初翼工系 > 양식< 樣式 >에 팔작지붕이며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별도 시설이 없이 연등천장으로 되었다.
조선< 朝鮮 > 인조< 仁祖 > 2년(1624) 남한산성< 南漢山城 >을 축성할 때 건립한 것으로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 武術 >을 연마하던 곳이며 이곳에서 무예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한양< 漢陽 >으로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당초에는 연무당< 演武堂 >이라 부르던 것을 숙종< 肅宗 >때에 수어사< 守禦使 > 김재호< 金在好 >로 하여금 개수< 改修 >하게 하고 연병관< 練兵館 >이라 쓴 편액< 扁額 >을 내리었다. 정조< 正祖 > 때에는 이를 수어영< 守禦營 >이라 개칭하였으나 그 뒤에도 통칭 연병관< 練兵館 > 또는 연무관< 練武館 >이라 부르고 있다. 이 건물은 초익공계< 初翼工系 > 양식< 樣式 >에 팔작지붕이며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별도 시설이 없이 연등천장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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