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본 건물은 구휼<救恤>사업 및 육영<育英>사업과 독립운동가<獨立運動架>의 지원<支援>을 펼친 바 있는 사업시행부<事業施行部>로서, 수봉 이규인(<秀峰 李圭寅> : 1859∼1936)선생이 1924년 서당<書堂>인 비해당<匪懈堂>과 약국<藥局>인 보인재<輔仁齋>를 갖춘 2층으로 건립<建立>하였으나 1953년 현재와 같이 단층으로 개수<改修>되었다. 선생은 사립의 경주고등보통학교를 설립<設立>하여 구국의 인재를 양성하려 하였으나 끝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의해 경주공립중학교로 수탈<收奪> 개교<開校>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선생의 유지대로 사학<私學>으로 환원<還元>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본 건물은 선생의 선각<先覺>과 실천궁행<實踐躬行>을 배우는 도장<道場>으로서 그 의미가 깊다.
본 건물은 구휼<救恤>사업 및 육영<育英>사업과 독립운동가<獨立運動架>의 지원<支援>을 펼친 바 있는 사업시행부<事業施行部>로서, 수봉 이규인(<秀峰 李圭寅> : 1859∼1936)선생이 1924년 서당<書堂>인 비해당<匪懈堂>과 약국<藥局>인 보인재<輔仁齋>를 갖춘 2층으로 건립<建立>하였으나 1953년 현재와 같이 단층으로 개수<改修>되었다. 선생은 사립의 경주고등보통학교를 설립<設立>하여 구국의 인재를 양성하려 하였으나 끝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의해 경주공립중학교로 수탈<收奪> 개교<開校>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선생의 유지대로 사학<私學>으로 환원<還元>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본 건물은 선생의 선각<先覺>과 실천궁행<實踐躬行>을 배우는 도장<道場>으로서 그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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