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492
이 집은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 : 1568∼1636)이 기거하던 곳으로 가옥의 사랑채에 해당된다. 처음에는 당호<堂號>를 흠흠당<欽欽堂>으로 하였으나 1760년경 중수<重修>한 후 충의당<忠義堂>으로 개칭하였다. 정면의 충의당을 중심으로 배면에 정침·고방채와 흠흠당이 □자형으로 배치되면서 우측에 제향공간<祭享空間>인 묘우<廟宇>가 자리하여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전형적인 배치법을 지니고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었다. 인근에는 선생을 추모하여 정려비각<旌閭碑閣>을 세우고 용산서원<龍山書院>에 배향하였다.
이 집은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 : 1568∼1636)이 기거하던 곳으로 가옥의 사랑채에 해당된다. 처음에는 당호<堂號>를 흠흠당<欽欽堂>으로 하였으나 1760년경 중수<重修>한 후 충의당<忠義堂>으로 개칭하였다. 정면의 충의당을 중심으로 배면에 정침·고방채와 흠흠당이 □자형으로 배치되면서 우측에 제향공간<祭享空間>인 묘우<廟宇>가 자리하여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전형적인 배치법을 지니고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었다. 인근에는 선생을 추모하여 정려비각<旌閭碑閣>을 세우고 용산서원<龍山書院>에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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