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 산37-15
고려 때는 절에서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호부(戶部)에서 사원이 소유하고 있는 전토의 경계선에 세운 석표가 이 국장생(國長生)이라 하는 것이다.
국장생이라 함은 나라의 하명함에 따라 세웠다는 장승이며 이러한 것은 통도사 주변과 밀양의 무안리(武安里)에만 남아 있는데 두곳의 것이 모두 고려 선종 2년(1085)에 세운 것으로써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장승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상천리의 국장생도 통도사의 토지경계선을 표시한 것으로 높이 172㎝, 폭 70㎝, 두께 30㎝가 된다.
장승은 용도나 그 세워진 장소에 따라 이름과 모습도 달라진다.
사람의 얼굴장승은 사원 입구나 마을 밖 또는 성문 밖에 서게되며 귀신얼굴 장승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비보지(裨補地)나 사원입구 또는 성문 밖에 세워진다.
또 석표로 된 장승은 사원 입구, 사원 경계, 절의 4방 비보지역(裨補地域)에 세워지며 돌을 쌓아올린 모양의 것은 사원의 비보지역, 사찰경계 표지로 세워진다.
남근(男根) 모양의 돌장승과 미륵불 모양의 것, 장군석으로 된 장승은 마을 입구나 서낭당에 세워지며 돌 하루방은 성문밖에 세워진다.
장승에 대한 이름도 지방에 따라 달라진다.
평안도나 함경도는 당승,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장승, 장신, 수살목, 수살막이, 호남지방은 장승, 장생, 미륵님, 수부막(水府幕), 영남지방은 장승, 벅수, 제주도에서는 돌하루방, 우성목, 옹중(翁仲), 옹중석(翁仲石), 돌부처, 돌미륵 등으로 부른다.
장승은 또 이정표(里程標)로도 세워 그 장승이 있었던 자리를 장승백이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통도사의 사리가사 사적약록(舍利袈裟事跡略錄)에 따르면 비보장생표가 12개인데 장소에 따라 목방장생표(木榜長生標), 석적장생표(石象長生標), 석비장생표(石碑長生標)를 두었다고 하였다.
상천리의 것은 이러한 것 가운데 석비장생표라 할 것이다.
상천리석표는 앞면에만 글을 음각하였고 아래부분은 크게 마멸 손상되고 있다. 그 새겨진 글은 아래와 같다.
國長生一座段寺
乙丑五月 日牒前
是於爲了等以立
乙丑十二月 日立
국장생 한좌는 사소보상서호부(寺所報尙書戶部)
울축년 5월 앞 공문서의 일
하이신들로(하시라는 데로) 세우다.
을축년 12월 일 세움
참고로 양산군 하북면의 보물 제74호의 비문과 사립사방산천비보(寺立四方山川裨補)를 적어둔다.
보물 제74호 비문
通度寺孫仍川國長生一座段寺所報尙書戶部乙丑五月 日牒前判兒如改立令是於爲了等以立 大安元年乙丑十二月日記
寺立四方山川裨補
裨補長生標十二者 門前洞口立黑 木榜長生標二東黑石峰置石적長生二 中省乃川机川各立石碑長生標二南沙川布川峰置石적長生標三西大峴嶺立石碑長生標一南大川立石碑長生一分搭排於四境合置于十每給位田沓及家代田竝四方長生標內田畓土地也右石碑石象搭排長生標內 曾無公私他土地乃宜春郡之境也
[대중교통]
울산공항에서
[19, 24, 124, 126]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6, 516]번을 타고 [신안]에서 하차
울산역에서
[102, 305, 314, 317. 327]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6, 516]번을 타고 [신안]에서 하차
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서
[516]번을 타고 [신안]에서 하차
고려 때는 절에서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호부(戶部)에서 사원이 소유하고 있는 전토의 경계선에 세운 석표가 이 국장생(國長生)이라 하는 것이다.
국장생이라 함은 나라의 하명함에 따라 세웠다는 장승이며 이러한 것은 통도사 주변과 밀양의 무안리(武安里)에만 남아 있는데 두곳의 것이 모두 고려 선종 2년(1085)에 세운 것으로써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장승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상천리의 국장생도 통도사의 토지경계선을 표시한 것으로 높이 172㎝, 폭 70㎝, 두께 30㎝가 된다.
장승은 용도나 그 세워진 장소에 따라 이름과 모습도 달라진다.
사람의 얼굴장승은 사원 입구나 마을 밖 또는 성문 밖에 서게되며 귀신얼굴 장승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비보지(裨補地)나 사원입구 또는 성문 밖에 세워진다.
또 석표로 된 장승은 사원 입구, 사원 경계, 절의 4방 비보지역(裨補地域)에 세워지며 돌을 쌓아올린 모양의 것은 사원의 비보지역, 사찰경계 표지로 세워진다.
남근(男根) 모양의 돌장승과 미륵불 모양의 것, 장군석으로 된 장승은 마을 입구나 서낭당에 세워지며 돌 하루방은 성문밖에 세워진다.
장승에 대한 이름도 지방에 따라 달라진다.
평안도나 함경도는 당승,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장승, 장신, 수살목, 수살막이, 호남지방은 장승, 장생, 미륵님, 수부막(水府幕), 영남지방은 장승, 벅수, 제주도에서는 돌하루방, 우성목, 옹중(翁仲), 옹중석(翁仲石), 돌부처, 돌미륵 등으로 부른다.
장승은 또 이정표(里程標)로도 세워 그 장승이 있었던 자리를 장승백이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통도사의 사리가사 사적약록(舍利袈裟事跡略錄)에 따르면 비보장생표가 12개인데 장소에 따라 목방장생표(木榜長生標), 석적장생표(石象長生標), 석비장생표(石碑長生標)를 두었다고 하였다.
상천리의 것은 이러한 것 가운데 석비장생표라 할 것이다.
상천리석표는 앞면에만 글을 음각하였고 아래부분은 크게 마멸 손상되고 있다. 그 새겨진 글은 아래와 같다.
國長生一座段寺
乙丑五月 日牒前
是於爲了等以立
乙丑十二月 日立
국장생 한좌는 사소보상서호부(寺所報尙書戶部)
울축년 5월 앞 공문서의 일
하이신들로(하시라는 데로) 세우다.
을축년 12월 일 세움
참고로 양산군 하북면의 보물 제74호의 비문과 사립사방산천비보(寺立四方山川裨補)를 적어둔다.
보물 제74호 비문
通度寺孫仍川國長生一座段寺所報尙書戶部乙丑五月 日牒前判兒如改立令是於爲了等以立 大安元年乙丑十二月日記
寺立四方山川裨補
裨補長生標十二者 門前洞口立黑 木榜長生標二東黑石峰置石적長生二 中省乃川机川各立石碑長生標二南沙川布川峰置石적長生標三西大峴嶺立石碑長生標一南大川立石碑長生一分搭排於四境合置于十每給位田沓及家代田竝四方長生標內田畓土地也右石碑石象搭排長生標內 曾無公私他土地乃宜春郡之境也
[대중교통]
울산공항에서
[19, 24, 124, 126]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6, 516]번을 타고 [신안]에서 하차
울산역에서
[102, 305, 314, 317. 327]번을 타고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6, 516]번을 타고 [신안]에서 하차
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서
[516]번을 타고 [신안]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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