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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서원 - 정무공(貞武公) 최진립을 향사(享祀)하기 위해 건립(建立)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659 외 2필

본 서원은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1568∼1636)을 향사<享祀>하기 위해 조선<朝鮮> 숙종<肅宗> 25년(1699)에 경주부윤<慶州府尹> 이형상<李衡詳>이 지방유림<地方儒林>과 함께 건립<建立>하였으며 동 37년(1711)에 숭열사우<崇烈祠宇>로 사액<賜額>된 바 있다. 그러나 고종<高宗> 7년(1870) 금령<禁令>에 의해 훼철<毁撤>되었고, 1924년에 중건<重建>, 복향<復享>되었다. 본관이 경주<慶州>인 공(자: 사건<士建>, 호: 잠와<潛窩>)은 현곡면 구미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아우인 계종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전공을 세우고 정유재란<丁酉再亂>을 당해서는 권율<權慄>을 도와 울산<蔚山> 서생포 전투에서 세운 공으로 선무원종 2등공신에 오른 것은 물론 경원도호부사,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용인에서 항전<抗戰>하다 순절<殉節>하였으며, 자헌대부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되고 청백리<淸白吏>에 기록되었다. 서원의 배치<配置>는 전면<前面>에 강학공간<講學空間>이 중심<中心>이 되는 민고당<敏古堂>을 세우고 배면<背面>에 제향공간<祭享空間>인 숭렬사를 둠으로써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방법을 택하였다. 우측<右側>에 관리사<管理舍>를 두어 서원을 보살피게하고 서원입구에 신도비각<神道碑閣>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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