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706
양동내< 良洞內 > 손씨문중< 孫氏門中 >인 강학당인 안락정< 安樂亭 >과 함께 쌍벽< 雙璧 >을 이루는 이씨문중< 李氏門中 >의 공용서당< 共用書堂 >이다. 이씨문중< 李氏門中 >의 서당< 書堂 >으로는 따로 규모가 큰 경산서당< 景山書堂 >이 있으나 경산서당< 景山書堂 >은 최근에 이축< 移築 >된 것이므로 역사< 歷史 >있는 원래< 元來 >의 문중< 門中 > 서당< 書堂 >은 이 강학당< 講學堂 >이 유일한 것이다. 심수정< 心水亭 >의 서상< 西上 > 산< 山 >허리에 위치하였으며 배산임계< 背山臨溪 >로 북촌< 北村 >을 조망< 眺望 >하는 자리에 있다. 동하< 東下 >로는 사이를 두어 삼간< 三間 > 일자형< 一字形 >의 행랑채가 부설되어 있다. 강학당은 ㄱ자형< 字形 > 서당건축< 書堂建築 >으로 역시 일반적인 일자형< 一字形 > 서당이나 정자< 亭子 >와 근본적으로 상이한 형식< 形式 >을 보인다. 이 서당의 안방 온돌< 溫突 >은 2간< 間 >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건넌방과 대칭< 對稱 >을 이루었으며 그것이 일자형< 一字形 > 기본< 基本 >틀이 되고 안방 아래로 마루 1간< 間 >과 판고< 板庫 > 1간< 間 >의 증설수요< 增設需要 >에 따라 ㄱ자형< 字形 >으로 변화한 연유를 짐작케 한다. 안방과 건넌방의 대청쪽은 모두 사분합< 四分閤 > 들문이어서 때에 따라서는 대청과 함께 4간통< 間通 >의 긴 공간< 空間 >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하였다. 굵은 방주< 方柱 >만을 썼으며 춤이 얕은 홑처마와 맞배지붕으로 꾸며졌고 합각에는 풍판< 風板 >이 부착되어 있다. 행랑채는 동하< 東下 >에서 서측< 西側 >을 향< 向 >하여 서당을 향해 있으며 역시 굵은 방주< 方柱 >를 사용한 맞배집이다. 방, 방, 부엌의 순< 順 >으로 구성된 평면< 平面 >은 역시 남부지방 소민가< 小民家 >의 한 작은 유형< 類型 >이며 하나의 기본형< 基本形 >이기도 한 것이다. 이 서당< 書堂 >은 1867년< 年 >(고종< 高宗 >4년< 年 >)경< 頃 > 현 소유자의 4대조< 代祖 >가 창명강학< 倡明講學 >하고 중유림< 重儒林 >한 업적< 業績 >이 있어 그 후학< 後學 >들이 수계출자< 修契出資 >해서 1870년경< 年頃 >에 세운 것이라 한다.
양동내< 良洞內 > 손씨문중< 孫氏門中 >인 강학당인 안락정< 安樂亭 >과 함께 쌍벽< 雙璧 >을 이루는 이씨문중< 李氏門中 >의 공용서당< 共用書堂 >이다. 이씨문중< 李氏門中 >의 서당< 書堂 >으로는 따로 규모가 큰 경산서당< 景山書堂 >이 있으나 경산서당< 景山書堂 >은 최근에 이축< 移築 >된 것이므로 역사< 歷史 >있는 원래< 元來 >의 문중< 門中 > 서당< 書堂 >은 이 강학당< 講學堂 >이 유일한 것이다. 심수정< 心水亭 >의 서상< 西上 > 산< 山 >허리에 위치하였으며 배산임계< 背山臨溪 >로 북촌< 北村 >을 조망< 眺望 >하는 자리에 있다. 동하< 東下 >로는 사이를 두어 삼간< 三間 > 일자형< 一字形 >의 행랑채가 부설되어 있다. 강학당은 ㄱ자형< 字形 > 서당건축< 書堂建築 >으로 역시 일반적인 일자형< 一字形 > 서당이나 정자< 亭子 >와 근본적으로 상이한 형식< 形式 >을 보인다. 이 서당의 안방 온돌< 溫突 >은 2간< 間 >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건넌방과 대칭< 對稱 >을 이루었으며 그것이 일자형< 一字形 > 기본< 基本 >틀이 되고 안방 아래로 마루 1간< 間 >과 판고< 板庫 > 1간< 間 >의 증설수요< 增設需要 >에 따라 ㄱ자형< 字形 >으로 변화한 연유를 짐작케 한다. 안방과 건넌방의 대청쪽은 모두 사분합< 四分閤 > 들문이어서 때에 따라서는 대청과 함께 4간통< 間通 >의 긴 공간< 空間 >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하였다. 굵은 방주< 方柱 >만을 썼으며 춤이 얕은 홑처마와 맞배지붕으로 꾸며졌고 합각에는 풍판< 風板 >이 부착되어 있다. 행랑채는 동하< 東下 >에서 서측< 西側 >을 향< 向 >하여 서당을 향해 있으며 역시 굵은 방주< 方柱 >를 사용한 맞배집이다. 방, 방, 부엌의 순< 順 >으로 구성된 평면< 平面 >은 역시 남부지방 소민가< 小民家 >의 한 작은 유형< 類型 >이며 하나의 기본형< 基本形 >이기도 한 것이다. 이 서당< 書堂 >은 1867년< 年 >(고종< 高宗 >4년< 年 >)경< 頃 > 현 소유자의 4대조< 代祖 >가 창명강학< 倡明講學 >하고 중유림< 重儒林 >한 업적< 業績 >이 있어 그 후학< 後學 >들이 수계출자< 修契出資 >해서 1870년경< 年頃 >에 세운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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