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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천군리사지 - 감은사지 등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천군동 548-1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동쪽 평지에 자리하고 있는 절터로 보물 제168호로 지정된 3층석탑 2기가 남아 있다. 절의 이름과 창건연대 등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석탑의 양식에 의하여 통일신라시대의 가람으로 추정된다. 2기의 탑은 규모와 형식이 같은데 동탑의 높이 673㎝, 서탑의 높이 772㎝로 서탑이 보다 잘 남아 있다. 탑의 기단은 이중 기단인데 하층 기단의 지대석 밑에 다시 1매의 지반석을 받쳤다. 상층과 하층의 기단 면석에는 2개씩의 탱주가 있으며, 상층 기단 갑석에는 부연이 있으며, 갑석의 윗면에는 2단의 각형 탑신받침이 있다. 탑신은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1매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각 층 옥개석에는 5단의 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서탑에만 일부 남아 있는데 2중 갑석이 있는 노반과 복발, 보륜, 그리고 수연이 남아 있다. 1938년 수리 복원하였는데 두 탑 모두 3층 옥신 상부 중앙에 사리공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1938년 탑을 수리 복원하면서 일본인들이 절터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보고서에 의하면 발굴조사전에는 석탑이 붕괴된 상태였고 초석·석재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발굴조사에서는 금당지, 강당지, 중문지 등이 확인되었다. 금당지는 기단의 규모가 정면 63.3척·측면 56.6척이며 지대석과 기단의 일부와 앞뒷면 중앙에 있는 폭 12척 내외의 계단지가 남아 있다. 금당의 기단 바깥쪽에는 폭 5.9척 내외의 범위에 걸쳐 무늬가 없는 전을 깔았다. 강당지에서는 초석의 적심석이 확인되었고 중문지는 초석과 초석 적심석 등이 남아 있었으나 중문지의 규모는 분명하지 않았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금당은 외둘레 1칸의 정면·측면 각 5칸의 건물로, 강당은 정면 8칸·측면 4칸의 건물로, 그리고 중문은 정면 3칸·측면 2칸으로 추정하는 가람추정 복원안이 제시되었다. 또 강당지의 좌우에 건물지가 달리고 동·서·남쪽에 회랑이 있으며 익랑은 없는 것으로 가람배치를 추정하기도 한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이 기와와 전돌이며 기와 중에는 용마루의 양쪽 끝에 놓였던 치미가 복원되었는데 높이 58㎝이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제시한 추정복원안에 따른 가람배치와 다른 가람배치도 제시되는데 금당 좌우에 회랑이 없다는 점은 공통이다. 이처럼 감은사지 등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따르면서 한편으로 익랑이 없어진 것은 시기차이로 볼 수도 있다. 이 점은 이 절터의 석탑이 감은사지, 보문리 사지 등의 석탑보다 양식상 늦다는 점과도 관련되며 창건연대를 8세기 후반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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