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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탁해왕탄가유허 - 신라( 新羅 ) 제4대 탈해왕(57∼80)이 탄강한 곳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538-1 외 7필

이곳은 신라< 新羅 > 제4대 탈해왕(57∼80)이 탄강한 곳이다. 신라 3대< 三大 > 왕성< 王姓 > 가운데 최초의 석씨< 昔氏 > 왕인 탈해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왜국< 倭國 >에서 동북쪽으로 천여리 떨어져 있는 다파나국< 多婆那國 > 왕비< 王妃 >가 잉태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하나 낳았는데, 이른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하여 왕이 궤속에 알과 칠보< 七寶 >, 노비< 奴婢 >를 함께 넣어 바다에 띄워 인연이 있는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라고 기원하였는데, 이때 적룡< 赤龍 >이 나타나 호위하였다. 그 궤가 신라 땅에 와 닿았을 때 아진의선< 阿珍義先 >이라는 노파가 발견하여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길렀다. 궤가 바다에 떠와서 닿았을 때 까치들이 우짖어서 발견하게 되었으므로 까치 '작< 鵲 >'자에서 '조< 鳥 >'자를 떼어 '석< 昔 >'으로 성< 姓 >을 삼고, 궤를 풀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 脫解 >'라 하였다 한다. 탈해는 자라서 제2대 남해왕< 南解王 >의 사위가 되고 62세에 유리왕< 儒理王 >의 뒤를 이어 제4대 임금이 되어 24년간 재위하였다. 탄강지는 『삼국유사< 三國遺事 >』에 "계림동< 鷄林洞 > 하서지촌< 下西知村 > 아진포< 阿珍浦 >"라 하였고, 조선< 朝鮮 > 헌종< 憲宗 > 11년(1845) 탄강지에 하마비< 下馬碑 >와 땅을 하사하여 석씨< 昔氏 > 문중< 門中 >에서 유허비< 遺墟碑 >와 비각< 碑閣 >을 건립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석탈해왕릉< 昔脫解王陵 >(사적< 史蹟 > 제174호)은 경주시< 慶州市 > 동천동< 東川洞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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