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산 30-2
박제상(朴堤上)과 그 부인을 향사하던 서원이다. 박제상은 신라 시조 혁거세의 후예이며 파사이사금 5대손으로서 눌지왕 때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왕제를 구출코자 먼저 고구려에 가 있던 복호(卜好)를 구출해 귀국시킨 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해 내었다.
그러나 그는 잡혀 목도(木島)로 유배되었다가 섶으로 몸을 불태운 후 베임(斬)을 당했다.
한편으로 박제상의 김씨부인은 오랜 뒤에 남편을 사모하는 정을 견디지 못하여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어서, 마침내 치술신모가 되었다.
이에 왕은 박제상을 대아찬을 추증하고 김씨부인을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책봉하며 미사흔은 박제상의 제2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은공에 보답하였다.
그 뒤 신모사를 짓고 치산서원을 세워 향제하여 충렬에 보답하여 왔으나 조선조 고종초에 서원의 철폐령에 따라 없어지고 말더니 지금은 그 자리에 서원을 다시 세워 기리고 있다.
박제상(朴堤上)과 그 부인을 향사하던 서원이다. 박제상은 신라 시조 혁거세의 후예이며 파사이사금 5대손으로서 눌지왕 때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왕제를 구출코자 먼저 고구려에 가 있던 복호(卜好)를 구출해 귀국시킨 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해 내었다.
그러나 그는 잡혀 목도(木島)로 유배되었다가 섶으로 몸을 불태운 후 베임(斬)을 당했다.
한편으로 박제상의 김씨부인은 오랜 뒤에 남편을 사모하는 정을 견디지 못하여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어서, 마침내 치술신모가 되었다.
이에 왕은 박제상을 대아찬을 추증하고 김씨부인을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책봉하며 미사흔은 박제상의 제2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은공에 보답하였다.
그 뒤 신모사를 짓고 치산서원을 세워 향제하여 충렬에 보답하여 왔으나 조선조 고종초에 서원의 철폐령에 따라 없어지고 말더니 지금은 그 자리에 서원을 다시 세워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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