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 204 호암미술관
금동제< 金銅製 > 빗장과 문고리 ·못 등 4점< 點 >이 일괄 출토된 것인데, 문고리와 못에도 도금< 鍍金 >부분이 잘 남아 있다.
빗장은 왼쪽 부분에서 분리 접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열쇠구멍도 왼쪽 옆에 뚫려 있다. 문고리는 둥글고 고리판도 둥글게 만들어 붙어 있다. 못은 문고리가 걸리도록 머리가 둥글고 굵직하다. 이러한 금동빗장의 유례< 遺例 >로는 유일한 것이므로 용도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보물< 寶物 > 제< 第 >781호< 號 > 금동용두토수< 金銅龍頭土首 > 등 유례< 遺例 >로 미루어 통일신라기< 統一新羅期 >의 전각< 殿閣 >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8세기< 世紀 > 중엽< 中葉 >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 화엄사< 華嚴寺 >의 사사자삼층석탑< 四獅子三層石塔 >에 빗장과 문고리에 달린 문형< 門形 >이 조각되어 있는 것과 아울러서 생각할 때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금동제< 金銅製 > 빗장과 문고리 ·못 등 4점< 點 >이 일괄 출토된 것인데, 문고리와 못에도 도금< 鍍金 >부분이 잘 남아 있다.
빗장은 왼쪽 부분에서 분리 접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열쇠구멍도 왼쪽 옆에 뚫려 있다. 문고리는 둥글고 고리판도 둥글게 만들어 붙어 있다. 못은 문고리가 걸리도록 머리가 둥글고 굵직하다. 이러한 금동빗장의 유례< 遺例 >로는 유일한 것이므로 용도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보물< 寶物 > 제< 第 >781호< 號 > 금동용두토수< 金銅龍頭土首 > 등 유례< 遺例 >로 미루어 통일신라기< 統一新羅期 >의 전각< 殿閣 >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8세기< 世紀 > 중엽< 中葉 >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 화엄사< 華嚴寺 >의 사사자삼층석탑< 四獅子三層石塔 >에 빗장과 문고리에 달린 문형< 門形 >이 조각되어 있는 것과 아울러서 생각할 때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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