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대덕면 토현리 산3
김중만< 金重萬 > 장군은 조선< 朝鮮 > 숙종< 肅宗 > 38년(1712)에 무과에 등제한 충청도수군절도사< 忠淸道水軍節度使 >에 이른 무인이다. 3본의 영정 중 대본< 大本 >(103×107cm)은 사모단령< 紗帽團領 >의 정장< 正裝 > 관복본< 官服本 >으로서 좌안< 左顔 > 7분면< 七分面 >의 공수자세< 拱手姿勢 >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가슴에 부착된 흉배< 胸背 >는 쌍학문양< 雙鶴紋樣 >, 대< 帶 >는 학정금대< 鶴頂金帶 >로서 문관< 文官 > 종2품< 從二品 > 때의 도상< 圖像 >임을 말해주므로, 장군이 분무공신책록< 奮武功臣冊錄 > 후 가의대부< 嘉義大夫 >에 올랐을 때의 상으로 추정된다. 한편 소본< 小本 > 2폭< 二幅 > 중 1본(29×42.5cm)은 공신화첩< 功臣畵帖 >본이며, 1본(29×30cm)은 족자형식< 簇子形式 >의 소폭이다. 그 중 공신화첩은 한쪽에는 그의 이력< 履歷 >을 기록하고, 맞은편에는 화상을 곁들인 형식이다. 공신화첩본은 흉배문양이 해태< 懈치 >이며, 족자형식< 簇子形式 >의 소본은 쌍학문양인 점만이 다르다. 이들 영정 3본은 공신책록을 기념하기 위한 공신상 형식의 도상으로서 초상화사< 肖像畵史 >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중만< 金重萬 > 장군은 조선< 朝鮮 > 숙종< 肅宗 > 38년(1712)에 무과에 등제한 충청도수군절도사< 忠淸道水軍節度使 >에 이른 무인이다. 3본의 영정 중 대본< 大本 >(103×107cm)은 사모단령< 紗帽團領 >의 정장< 正裝 > 관복본< 官服本 >으로서 좌안< 左顔 > 7분면< 七分面 >의 공수자세< 拱手姿勢 >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가슴에 부착된 흉배< 胸背 >는 쌍학문양< 雙鶴紋樣 >, 대< 帶 >는 학정금대< 鶴頂金帶 >로서 문관< 文官 > 종2품< 從二品 > 때의 도상< 圖像 >임을 말해주므로, 장군이 분무공신책록< 奮武功臣冊錄 > 후 가의대부< 嘉義大夫 >에 올랐을 때의 상으로 추정된다. 한편 소본< 小本 > 2폭< 二幅 > 중 1본(29×42.5cm)은 공신화첩< 功臣畵帖 >본이며, 1본(29×30cm)은 족자형식< 簇子形式 >의 소폭이다. 그 중 공신화첩은 한쪽에는 그의 이력< 履歷 >을 기록하고, 맞은편에는 화상을 곁들인 형식이다. 공신화첩본은 흉배문양이 해태< 懈치 >이며, 족자형식< 簇子形式 >의 소본은 쌍학문양인 점만이 다르다. 이들 영정 3본은 공신책록을 기념하기 위한 공신상 형식의 도상으로서 초상화사< 肖像畵史 >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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