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 204 호암미술관
학포< 學圃 > 이상좌< 李上佐 >는 출신은 미천하였으나 도화서< 圖畵署 >의 화원으로서 많은 그림을 남겨 이름을 떨쳤다. 이상좌< 李上佐 >의 그림을 보면 산수화는 마하화풍< 馬夏畵風 >이고, 인물화는 극세극채< 極細極彩 >의 북종화법< 北宗畵法 >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어진< 御眞 >도 그렸고 공신도< 功臣圖 > 등도 그렸으며, 송하보월도< 松下步月圖 >와 어가한면도< 漁暇閑眠圖 > 등 산수인물화도 그렸다. 이 불화첩< 佛畵帖 >은 여러가지 불상< 佛像 >의 기본적인 모습을 백묘< 白描 >로 그리고 그 위에 수묵담채< 水墨淡彩 >를 약간씩 시채< 施彩 >한 것으로 그의 불화법< 佛畵法 >뿐만 아니라 조선< 朝鮮 >시대 전기의 불화법< 佛畵法 >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필선< 筆線 >은 대체로 간략한 편이어서 오도자< 吳道子 >의 백묘불화< 白描佛畵 >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불화첩< 佛畵帖 >에는 이상좌< 李上佐 >의 낙관< 落款 >이 없어 원화< 原畵 >여부에 대한 의심도 가질 수 있으나 미수< 眉수 > 허목< 許穆 >(1595∼1682)이 쓴 전서제어< 篆書題語 >가 있어 그의 수장첩< 手粧帖 >이었으므로 이상좌< 李上佐 >의 그림이라는 허목< 許穆 >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5엽< 葉 >으로 이루어진 이 이상좌불화첩< 李上佐佛畵帖 >은 저지첩장본< 楮紙帖裝本 >으로 보존 상태도 좋은 편이다.
학포< 學圃 > 이상좌< 李上佐 >는 출신은 미천하였으나 도화서< 圖畵署 >의 화원으로서 많은 그림을 남겨 이름을 떨쳤다. 이상좌< 李上佐 >의 그림을 보면 산수화는 마하화풍< 馬夏畵風 >이고, 인물화는 극세극채< 極細極彩 >의 북종화법< 北宗畵法 >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어진< 御眞 >도 그렸고 공신도< 功臣圖 > 등도 그렸으며, 송하보월도< 松下步月圖 >와 어가한면도< 漁暇閑眠圖 > 등 산수인물화도 그렸다. 이 불화첩< 佛畵帖 >은 여러가지 불상< 佛像 >의 기본적인 모습을 백묘< 白描 >로 그리고 그 위에 수묵담채< 水墨淡彩 >를 약간씩 시채< 施彩 >한 것으로 그의 불화법< 佛畵法 >뿐만 아니라 조선< 朝鮮 >시대 전기의 불화법< 佛畵法 >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필선< 筆線 >은 대체로 간략한 편이어서 오도자< 吳道子 >의 백묘불화< 白描佛畵 >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불화첩< 佛畵帖 >에는 이상좌< 李上佐 >의 낙관< 落款 >이 없어 원화< 原畵 >여부에 대한 의심도 가질 수 있으나 미수< 眉수 > 허목< 許穆 >(1595∼1682)이 쓴 전서제어< 篆書題語 >가 있어 그의 수장첩< 手粧帖 >이었으므로 이상좌< 李上佐 >의 그림이라는 허목< 許穆 >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5엽< 葉 >으로 이루어진 이 이상좌불화첩< 李上佐佛畵帖 >은 저지첩장본< 楮紙帖裝本 >으로 보존 상태도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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