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골어귀 삼릉에서 400m 경주쪽으로 가면 선방골입구가 된다. 경주시내에서 1.4km 되는 지점이다. 이 계곡은 도로에서 약700m밖에 안되는 낮은 계곡인데 두곳의 절터와 4체의 불상과 2기의 석탑이 남아있다. 유적과 유물은 모두 파괴되어 원래의 모습은 알수 없으나 그 중 삼존석불은 보존이 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남산 감실불상이나 장창골삼존석불과 같이 삼국시대 석불로서 신라시대 불상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불상이다. 도로에서 약150m 들어서면 근래에 세운 삼불사라는 암자가 있고 그 동쪽 언덕위에 삼존석불이 있다.
이 석불들은 원래 이곳 땅속에 일부 묻혀서 흩어져 누워있던 것을 일본인들이 불굴하여 1923년 1월에 현위치에 모아 세워 놓은 것이다. 이곳 삼존불은 모두 입상인데 가운데 여래입상의 높이가 2.7m나 되며 비교적 큰불상에 속한다. 얼른 보아서는 삼존불상이 모두 명랑하고 천진스런 어린아이들처럼 보인다.
불상들의 이러한 표정은 조각될 당시인 7세기초엽의 명랑하고 천진스럽던 국민성이 반영되었고 또 전신의 키가 머리길이의 5배로 아기들 키와같은 비례로 조성 되었기 때문이다. 길이보다는 너비가 넓어보이는 풍만한 얼굴에 크게 반원을 그린 눈썹이 깊이 패어졌고 그밑에 눈두덩이 부풀어 올라 가느스럼한 눈자위에 그늘을 지우면서 두눈이 천진스럽게 웃음 짓는다. 짧은 코아래 두툼한 입술 그 양가에 언덕을 이룬 두빰에 어려 화사한 미소가 피어 난다. 두눈썹 사이에 백호가 뚜렸하고 육계와 머리는 나발로 표현되어 있는데 육계의 앞에는 머리카락이 없는 부분이 있다. 이부분을 足이라 한다.
"부처님의 머리카락밑의 피부는 붉은 빛이다"라는 경문의 구절이 있는데 부처님을 그릴때 이 구절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부는 머리카락을 그리지 않고 피부를 노출시켜 나타내는데 이를 말함이다. 또 이모습을 조각으로 나타낼때 이부분에 보석을 박는 예도 있지만 신라불상에서 사족을 나타낸 예는 극히 드문일이다.
돌로 불상을 조성할 때는 팔굽이 몸체에 붙어 있는 것이 편리하고 파손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이 불상들은 불상이 귀하던 시대에 동불을 견본으로하여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왼쪽 협시보살이 관세음보살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가운데 여래상은 아미타여래이고 조성된 시기는 7세기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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