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불국사< 佛國寺 > 강당< 講堂 > 뒷면에 마련된 소각< 小閣 >에 보존되어 있다. 외형이 석등< 石燈 >과 흡사한 사리탑< 舍利塔 >으로, 사적기< 寺蹟記 >에 나오는 광학부도< 光學浮屠 >가 바로 이것이다. 1906년에 일본< 日本 >으로 반출되었으나 1935년 반환된 경위를 가진 것이다. 약간 홍색을 띤 조질< 粗質 >의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네모반듯한 지복석< 地覆石 > 위에 8각형 지대석< 地臺石 > 각 면에는 아래위로 테를 돌린 사이에 안상< 眼象 > 1좌< 座 >씩을 조각하였으니, 지선< 地線 >에서는 화형< 花形 >이 솟아 간지< 間地 >를 채우고 있다. 그 위의 복련석< 伏蓮石 >에는 큼직한 단판연화< 單瓣蓮華 > 8엽< 葉 >을 조각하였고, 중대석< 中臺石 >은 고형< 鼓形 >으로 표면에 웅혼한 운문< 雲文 >이 조각되었다.
상대석< 上臺石 >하부에는 단판연화< 單瓣蓮華 > 9엽< 葉 >을 돌렸고, 판< 瓣 >의 중앙에는 화형< 花形 > 원자< 圓座 >가 있으며, 윗면에는 탑신 주위로 20과< 顆 >의 연자< 蓮子 >가 음각되었다. 탑신은 배가 부른 원통형의 특이한 형태로 아래 위에 연화와 보상화< 寶相華 >를 조각한 기둥 모양을 세워 4구< 區 >로 구분하고 있다. 각 구에는 얕은 불감< 佛龕 >을 개설하여 그 안에 여래좌상< 如來坐像 > 2구< 軀 >와 보살입상< 菩薩立像 > 2구< 軀 >를 양각하였으며, 감실< 龕室 > 윗부분에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개석은 추녀 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 頂上 >을 향하면서 6개의 능선< 稜線 >이 소멸되어 6각을 이루게 되었다. 밑면에는 16판연화< 瓣蓮華 >가 중첩< 重疊 >되었고, 옥상< 屋上 >의 경사는 매우 완만하다. 옥개석< 屋蓋石 > 꼭대기에는 낮게 6각형 노반< 露盤 >이 놓이고, 그 위에 횡대< 橫帶 >와 화형< 花形 >이 있는 편구형< 扁球形 > 복발< 覆鉢 >이 얹혀 있다.
한편, 탑신 윗부분 중앙에는 지름 5㎝의 둥근 구멍이 뚫리고 이 둥근 구멍은 옥개석을 관통하고 있으니 아마도 탱주공< 탱柱孔 >으로 생각되며, 앙련석< 仰蓮石 > 윗부분 중앙에는 장방형과 원형을 이은 홈이 패여 있으니 사리공< 舍利孔 >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개석의 일부가 파손을 입고 있으나 석질< 石質 >이 연약한 탓으로 곳곳에 풍화 현상이 있는 것 말고는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사리탑< 舍利塔 >은 신라< 新羅 >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져 왔으나 하대< 下臺 >의 안상수법< 眼象手法 >, 중대석의 운문수법< 雲文手法 > 또는 탑신의 감실< 龕室 > 주연선<周緣線 >이 고려< 高麗 >시대 안상< 眼象 >의 윤곽선< 輪廓線 >과 흡사한 점 등 고려< 高麗 >시대의 특징이 여실히 나타나 있음을 보겠다. 전면< 全面 >의 조식< 彫飾 >은 화려하고 조각 기법 또한 섬려< 纖麗 >할 뿐 아니라 전체의 조화를 얻은 미려< 美麗 >한 작품이다. 탑신에 조각된 4구< 軀 >의 불< 佛 > ·보살< 菩薩 >의 수법은 신라시대< 新羅時代 >의 그것을 계승하고 있으니, 그 제작이 고려< 高麗 >초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
불국사< 佛國寺 > 강당< 講堂 > 뒷면에 마련된 소각< 小閣 >에 보존되어 있다. 외형이 석등< 石燈 >과 흡사한 사리탑< 舍利塔 >으로, 사적기< 寺蹟記 >에 나오는 광학부도< 光學浮屠 >가 바로 이것이다. 1906년에 일본< 日本 >으로 반출되었으나 1935년 반환된 경위를 가진 것이다. 약간 홍색을 띤 조질< 粗質 >의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네모반듯한 지복석< 地覆石 > 위에 8각형 지대석< 地臺石 > 각 면에는 아래위로 테를 돌린 사이에 안상< 眼象 > 1좌< 座 >씩을 조각하였으니, 지선< 地線 >에서는 화형< 花形 >이 솟아 간지< 間地 >를 채우고 있다. 그 위의 복련석< 伏蓮石 >에는 큼직한 단판연화< 單瓣蓮華 > 8엽< 葉 >을 조각하였고, 중대석< 中臺石 >은 고형< 鼓形 >으로 표면에 웅혼한 운문< 雲文 >이 조각되었다.
상대석< 上臺石 >하부에는 단판연화< 單瓣蓮華 > 9엽< 葉 >을 돌렸고, 판< 瓣 >의 중앙에는 화형< 花形 > 원자< 圓座 >가 있으며, 윗면에는 탑신 주위로 20과< 顆 >의 연자< 蓮子 >가 음각되었다. 탑신은 배가 부른 원통형의 특이한 형태로 아래 위에 연화와 보상화< 寶相華 >를 조각한 기둥 모양을 세워 4구< 區 >로 구분하고 있다. 각 구에는 얕은 불감< 佛龕 >을 개설하여 그 안에 여래좌상< 如來坐像 > 2구< 軀 >와 보살입상< 菩薩立像 > 2구< 軀 >를 양각하였으며, 감실< 龕室 > 윗부분에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개석은 추녀 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 頂上 >을 향하면서 6개의 능선< 稜線 >이 소멸되어 6각을 이루게 되었다. 밑면에는 16판연화< 瓣蓮華 >가 중첩< 重疊 >되었고, 옥상< 屋上 >의 경사는 매우 완만하다. 옥개석< 屋蓋石 > 꼭대기에는 낮게 6각형 노반< 露盤 >이 놓이고, 그 위에 횡대< 橫帶 >와 화형< 花形 >이 있는 편구형< 扁球形 > 복발< 覆鉢 >이 얹혀 있다.
한편, 탑신 윗부분 중앙에는 지름 5㎝의 둥근 구멍이 뚫리고 이 둥근 구멍은 옥개석을 관통하고 있으니 아마도 탱주공< 탱柱孔 >으로 생각되며, 앙련석< 仰蓮石 > 윗부분 중앙에는 장방형과 원형을 이은 홈이 패여 있으니 사리공< 舍利孔 >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개석의 일부가 파손을 입고 있으나 석질< 石質 >이 연약한 탓으로 곳곳에 풍화 현상이 있는 것 말고는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사리탑< 舍利塔 >은 신라< 新羅 >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져 왔으나 하대< 下臺 >의 안상수법< 眼象手法 >, 중대석의 운문수법< 雲文手法 > 또는 탑신의 감실< 龕室 > 주연선<周緣線 >이 고려< 高麗 >시대 안상< 眼象 >의 윤곽선< 輪廓線 >과 흡사한 점 등 고려< 高麗 >시대의 특징이 여실히 나타나 있음을 보겠다. 전면< 全面 >의 조식< 彫飾 >은 화려하고 조각 기법 또한 섬려< 纖麗 >할 뿐 아니라 전체의 조화를 얻은 미려< 美麗 >한 작품이다. 탑신에 조각된 4구< 軀 >의 불< 佛 > ·보살< 菩薩 >의 수법은 신라시대< 新羅時代 >의 그것을 계승하고 있으니, 그 제작이 고려< 高麗 >초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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