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주황남리고분군 - 고신라 묘제(古新羅 墓制)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황남동 6-1

경주시내 평지 고분군<平地 古墳群> 가운데 서남쪽 부분으로 20여기<餘基>의 대소<大小> 고분이 남아 있다. 그중 전 미추왕릉<傳 味鄒王陵>을 중심으로 밀집 분포된 18기<基>의 고분들은 1973년 대릉원<大陵苑>이라 이름 붙여진 고분공원<古墳公園>으로 조성되었다. 지상에 봉우리가 솟아 있는 고분들은 외형상 모두 봉토분<封土墳>으로 되어 있으며 단독의 원형분<圓形墳>과 함께 표형쌍분<瓢形雙墳>도 있다. 이 고분들은 대부분 고신라<古新羅> 특유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사된 109호분에는 순차적으로 조성된 3개의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가 있었고 그 가운데 먼저 아래에 만들어진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는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고신라 적석목곽분<古新羅 積石木槨墳>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3년에 발굴된 천마종<天馬塚>(제155호분)에서는 금관<金冠>과 금제과대<金製과帶>를 비롯하여 무기<武器>, 마구<馬具>, 금속용기<金屬容器>, 칠기<漆器>등 각종의 호화로운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채색 천마도<彩色 天馬圖>를 그린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말다래[장니<障泥>]가 나와 최고<最古>의 고신라 회화<古新羅 繪畵>자료를 제공하였다. 1973-5년에 발굴조사된 황남대총<皇南大塚>(제98호분)은 원형분 2기<圓形墳 2基>가 남북으로 연접된 표형쌍분<瓢形雙墳>으로 남북길이 120m, 동서직경 80m, 높이 23m인 경주 최대의 고분이다. 조사 결과 남분<南墳>이 먼저 축조된 남자무덤이고 북분<北墳>이 뒤에 추가된 여자무덤이었음이 밝혀졌는데, 남북분에서는 모두 먼저 통나무로 가구<架構>를 설치하고 냇돌을 쌓은 적석부<積石部>가 발견되어 고신라 적석목곽분<古新羅 積石木槨墳> 초기 대형분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또한 먼저 축조된 남분에는 주곽<主槨>과 부곽<副槨>이 동서로 배치되어 있었으나 뒤에 추가된 북분에는 부곽<副槨>이 생략되어 있어 적석목곽분의 내부구조 변화도 알려주었다. 남분<南墳>에서는 금관<金冠>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금제과대<金製과帶>를 비롯한 각종 호화로운 유물이 출토되었고 특히 여러 벌의 마구<馬具> 중 한 벌은 안장<鞍裝>, 등자<등子>, 재갈, 각종 장식구<裝飾具> 등 모두가 비단 벌레 날개로 장식되어 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북분<北墳>의 피장자<被葬者>는 금관과 금제과대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조사된 신라고분 가운데 가장 많은 금제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었으며 부장품<副葬品> 중에는 (부인대<夫人帶>)라는 침각명<針刻銘>이 있는 은제대구<銀製帶具>가 있어 피장자<被葬者>가 여자였음을 증명하였다. 한편 1966년도에 조사된 151호분에서는 횡구식석곽<橫口式石槨>이 발견되었고, 고분공원 조성에 따른 공사 중 대형분<大形墳> 사이 사이에서 지상<地上>에는 봉분<封墳>이 나와 있지 않은 소형 고분 수백기<數百基>가 지하<地下>에서 발견되어 조사되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뿐만 아니라 수혈식석곽분<竪穴式石槨墳>, 옹관묘<甕棺墓>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적석목곽분 가운데에서도 여러가지 형식의 다곽분<多槨墳>들이 있어 고신라 묘제<古新羅 墓制>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