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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오자치영정 - 선인들의 문화적인 안목과 솜씨를 확인

by 넥스루비 2007. 8. 7.
광주 광산구 송산동 825

오자치는 세조 13년(1467) 이시애란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이 공으로 세조가 영정을 하사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성종 7년(1476) 성종이 충훈부에 명하여 모든 공신의 영정을 그리도록 하였는데 이 영정도 이때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오자치의 기록은 세조실록과 성종실록에 약간의 내용이 있을 뿐 그외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실록에 의하면 그는 활을 아주 잘 쏘았으며, 1476년 나성군 오자치가 부노로 인해 나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비단바탕에 채색한 이 영정은 좌안칠분면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이다. 오사모에 검은 빛을 띠는 푸른색 옷을 입고 두손을 맞잡고 있으며 하얀 가죽신을 신고 있다. 화폭은 3폭인데 이를 꿰매어 서로 연결한 것으로 고식을 보이고 있다. 흉배는 호랑이와 표범 무늬의 직금흉배로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그가 무관 무관 1품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얼굴은 살색으로 그린후, 갈색선으로 윤곽을 잡았으나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전혀 나타나 있지않다. 입술은 약간 토황빛나는 색으로 칠하여 침착한 느낌을 준다. 옷차림은 단령(둥글게 만든 깃)의 외곽선이 매우 뾰족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단령의 옆부분과 트임사이로 내비치는 안감과 첩리의 형태감 역시 풀먹인 옷감의 질감처럼 세차게 뻗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묘사된 주름선은 암시적으로 표현하여 간략한 선으로 나타내였다. 바닥에는 채전이나 돗자리가 깔려 있지 않아 인물이 들어 앉는공간이 표현되어 있지않다. 오자치상은 조선 초기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형식과 화법을 예시해 주는 상으로 매우 중요한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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