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계림동 100-1 금초APT112동 902호
저자 노인(魯認:1566∼1623)이 정유재란때 남원성 전투에서 왜병에게 붙잡혀 일본에서 2년동안 포로(捕虜)생활을 하다 명나라 사절단의 배로 도주하여 북경을 거쳐 귀국하게 된 경위를 일기로 적은 책이다. 이 책은 선조32년(1599) 2월 22일부터 그해 6월 27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당초에는 남원성 전투에서 왜병에게 붙잡힌 경위부터 고향에 돌아올 때 까지의 기록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귀국 후 따로 정리해 둔 것으로 생각되는 용사부의록(龍蛇赴義錄)과 주환록(周還錄)으로 정리되어 200년 뒤 그의 7대손 魯주등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금계집(金溪集) 속에 수록되어 전후(前後)의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노인의 자(字)는 공직(公직), 호(號)는 금계(金溪)다. 1566년 나주 하의리(荷衣里 현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에서 태어나 14세부터 율곡문하의 南창 김광운(金光運)에게 사사(師事)하여 17세에 이미 진사시(進士試)에 올랐다. 20세때 내수사별제(內需司別提)로 관계에 나아갔으며 27세때 임진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모아 광주목사 권율장군 휘하로 달려가 이치(梨峙)와 진산(珍山)에서 두 차례에 걸친 승리를 거두었고 행주전에서 다시 대승을 거두었다. 1597년 정유왜란 때 대구 팔공산성을 지키고 있던 중 남원성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구원하러 갔다가 화살에 맞아 부상 당해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갔다.
저자 노인(魯認:1566∼1623)이 정유재란때 남원성 전투에서 왜병에게 붙잡혀 일본에서 2년동안 포로(捕虜)생활을 하다 명나라 사절단의 배로 도주하여 북경을 거쳐 귀국하게 된 경위를 일기로 적은 책이다. 이 책은 선조32년(1599) 2월 22일부터 그해 6월 27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당초에는 남원성 전투에서 왜병에게 붙잡힌 경위부터 고향에 돌아올 때 까지의 기록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귀국 후 따로 정리해 둔 것으로 생각되는 용사부의록(龍蛇赴義錄)과 주환록(周還錄)으로 정리되어 200년 뒤 그의 7대손 魯주등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금계집(金溪集) 속에 수록되어 전후(前後)의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노인의 자(字)는 공직(公직), 호(號)는 금계(金溪)다. 1566년 나주 하의리(荷衣里 현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에서 태어나 14세부터 율곡문하의 南창 김광운(金光運)에게 사사(師事)하여 17세에 이미 진사시(進士試)에 올랐다. 20세때 내수사별제(內需司別提)로 관계에 나아갔으며 27세때 임진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모아 광주목사 권율장군 휘하로 달려가 이치(梨峙)와 진산(珍山)에서 두 차례에 걸친 승리를 거두었고 행주전에서 다시 대승을 거두었다. 1597년 정유왜란 때 대구 팔공산성을 지키고 있던 중 남원성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구원하러 갔다가 화살에 맞아 부상 당해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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