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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이주국장군고택 - 이주국의 생가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 414-4

본 가옥은 조선 영조< 英祖 >·정조< 正祖 > 년간에 무신으로서 많은 공적을 남긴 이주국< 李柱國 1721~1798 >의 생가< 生家 >로 전한다. 이주국은 조선 정종< 定宗 >의 아들인 덕천군< 德泉君 >의 후손으로 경종< 景宗 > 1년에 이 곳 원삼면 문촌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이 곳에 전하는 관련 유적으로는 묘소·신도비·생가·정자터 등이 전한다. 묘역은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건축연대와 관련하여 안채의 망와< 望瓦 >에 기록된 명문< 銘文 >을 참고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건륭18년계유일조작< 乾隆十八年癸酉日造作 >'이라고 되어 있어 이 가옥이 영조 29년(1753)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가옥은 안채·사랑채·행랑채 등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ㄱ자형< 字形 >을 기본으로 하여 가운데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을 두고 그 앞으로 3칸의 날개를 달아 부엌, 광을 두었다. 부엌날개의 반대편으로 안방 뒤에 한 칸을 내달고 대청 맞은 편 건너방 앞으로도 반 칸을 덧달아 지붕은 공자< 工字 >의 한쪽 날개가 생략된 형태를 갖게 되었다. 사랑채는 4칸으로 구성되었는데 왼쪽에 청방을 두고 가운데 2칸에 방과 마루, 오른쪽에 다락방과 아궁이를 시설하였다. 행랑채는 길에 면하여 7칸반으로 구성되었는데 소슬대문 옆으로 2칸의 방을 들이고 나머지 4칸은 창고로 구성되었다. 안채는 경기도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곱은자집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으나 안방 뒤와 건너방 앞으로 각각 한칸, 반칸을 덧달아 3량가로 가구함으로써 곱은자집의 확대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사랑채는 안채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나 평면구성에서 방과 마루, 다락, 아궁이 등이 짜임새있게 갖추어지고 각각의 시설이 성격과 방향을 명확히 나태내고 있다. 아직 누마루가 갖추어지지 않은 점은 고전적 평면의 특징이다. 현재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마당과 안마당이 연속되어 있으나 원래의 모습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사랑채의 평면구성 특히 청방과 아궁이의 위치, 최근에 안마당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화단 등에서 볼 때 사랑채의 오른쪽 모퉁이를 기점으로 사랑마당과 안마당을 구획하는 담장과 중문채가 있어서 각각의 공간을 명확하게 나누고 동선과 시선도 분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하면 사랑채의 전면과 측면의 구성에 대한 성격과 기능이 뚜렷해지고, 행랑채의 대문과 방의 위치, 안마당의 크기와 시선 방향 등이 적절한 구성을 갖게 된다. 화계의 조성, 식목, 뒤란의 활용, 경사지의 조절과 담장의 구성 방법 등은 향촌에 조영된 반가의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원형을 잃어 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가옥의 입지와 채 구성, 공간 분할, 조경 수법 등에서 고전적인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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