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군포시 속달동 24-4
입향조는 조선중기의 문신 정사룡< 鄭士龍, 1491~1570 >으로 전하는데, 그는 동래군< 東萊君 > 정난종< 鄭蘭宗, 1433~1489 >의 손자이다. 본 가옥의 맞은편 산중턱에 파시조< 派始祖 >인 정난종선생의 묘가 있어 이로 인해 입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1877년에 지어졌으며, 안채는 사랑채보다 100여년 전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안채의 대청마루 종도리 장여 측면에 상량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간지< 干支 >는 보이지 않으나 '성상즉위칠년< 聖上卽位七年 >'이라는 글자가 보이므로 안채는 조선 정조< 正祖 > 칠년< 七年 >인 178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초당과 외양간은 6.25전쟁 때 소실되고, 사당은 60년대에 철훼하였으며, 방앗간이 있던 바깥행랑채는 70년대에 무너진 것으로 전한다. 안채는 근래에 안방과 건넌방 등을 확장하고, 입식부엌을 들이는 등 개조되었으나 기본 가구는 유지된 상태이다. 사랑채와 문간채는 비교적 양호하게 원상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 사랑채는 원상을 유지하고 있으나 기울어가는 형편이다. 행랑채는 2년전 수해를 당해 가운데 칸이 무너졌고 심하게 기울고 부후되는 등 상태가 좋지 못하다. 전체적으로 관리상태가 나쁜 편이다. 건축적 특징은 사랑채는 전면 5칸으로 구성된 전후툇집으로 평면 구성이 독특하다. 향좌측 첫째 칸은 반 칸을 앞으로 더 내밀어 1칸크기로 난간을 두른 누마루로 구성하고 문간쪽으로는 아궁이를 두고 상부에 사랑방에서 연결되는 다락을 두었다. 사랑방은 두번째와 세번째 칸에 걸쳐 방을 들이고 후면에 외벽이 있는 툇마루를 두어 누마루 뒷 편 다락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네번째 칸은 마루방인데 뒷편에 안채로 드나들 수 있게 마루복도를 두었다. 다섯째 칸은 행사청이라고 부르는 방으로 전면으로는 창만 두고 후면에 툇마루를 놓아 안마당 쪽을 향하도록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매우 기능적이고 평면 분할이 독특하여 주목되는 사례로 평가된다. 작은 사랑채는 3칸으로 구성된 전퇴집으로 위치와 규모 등이 독특하여 주목된다. 예전에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문간채는 원래 3칸집으로 사랑채와 연결되는 부분에 대문을 두고 나머지 칸은 창고로 사용되던 것이다. 후에 다시 5칸을 덧달아 지어 안채의 폐쇄성이 강해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사랑채의 평면 분할 방식, 행사청의 구성, 작은 사랑채의 위치 설정 등이 독창적이고, 기능성을 중시한 구성이 조선후기 살림집으로서의 시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입향조는 조선중기의 문신 정사룡< 鄭士龍, 1491~1570 >으로 전하는데, 그는 동래군< 東萊君 > 정난종< 鄭蘭宗, 1433~1489 >의 손자이다. 본 가옥의 맞은편 산중턱에 파시조< 派始祖 >인 정난종선생의 묘가 있어 이로 인해 입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1877년에 지어졌으며, 안채는 사랑채보다 100여년 전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안채의 대청마루 종도리 장여 측면에 상량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간지< 干支 >는 보이지 않으나 '성상즉위칠년< 聖上卽位七年 >'이라는 글자가 보이므로 안채는 조선 정조< 正祖 > 칠년< 七年 >인 178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초당과 외양간은 6.25전쟁 때 소실되고, 사당은 60년대에 철훼하였으며, 방앗간이 있던 바깥행랑채는 70년대에 무너진 것으로 전한다. 안채는 근래에 안방과 건넌방 등을 확장하고, 입식부엌을 들이는 등 개조되었으나 기본 가구는 유지된 상태이다. 사랑채와 문간채는 비교적 양호하게 원상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 사랑채는 원상을 유지하고 있으나 기울어가는 형편이다. 행랑채는 2년전 수해를 당해 가운데 칸이 무너졌고 심하게 기울고 부후되는 등 상태가 좋지 못하다. 전체적으로 관리상태가 나쁜 편이다. 건축적 특징은 사랑채는 전면 5칸으로 구성된 전후툇집으로 평면 구성이 독특하다. 향좌측 첫째 칸은 반 칸을 앞으로 더 내밀어 1칸크기로 난간을 두른 누마루로 구성하고 문간쪽으로는 아궁이를 두고 상부에 사랑방에서 연결되는 다락을 두었다. 사랑방은 두번째와 세번째 칸에 걸쳐 방을 들이고 후면에 외벽이 있는 툇마루를 두어 누마루 뒷 편 다락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네번째 칸은 마루방인데 뒷편에 안채로 드나들 수 있게 마루복도를 두었다. 다섯째 칸은 행사청이라고 부르는 방으로 전면으로는 창만 두고 후면에 툇마루를 놓아 안마당 쪽을 향하도록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매우 기능적이고 평면 분할이 독특하여 주목되는 사례로 평가된다. 작은 사랑채는 3칸으로 구성된 전퇴집으로 위치와 규모 등이 독특하여 주목된다. 예전에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문간채는 원래 3칸집으로 사랑채와 연결되는 부분에 대문을 두고 나머지 칸은 창고로 사용되던 것이다. 후에 다시 5칸을 덧달아 지어 안채의 폐쇄성이 강해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사랑채의 평면 분할 방식, 행사청의 구성, 작은 사랑채의 위치 설정 등이 독창적이고, 기능성을 중시한 구성이 조선후기 살림집으로서의 시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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