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 임암동 64
이들 유적은 돌머리라 불리는 표고 20∼30m의 낮은 구릉지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구릉정상부를 경계로 마을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지역이다. 이 일대는 영산강 지류인 대촌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곳으로 취락지 형성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임암동 주거지(집자리)는 일부 유실되었으며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으로 지름 4.3m, 면적 14.86㎡이다. 내부구조는 북벽 가까이에 감실<龕室>이 있으며, 중앙과 남북에 각 2개의 기둥이 있는데 남북구멍은 대칭이다. 주거지 남쪽에는 33∼80㎝너비의 입구가 있으며 중앙에는 갈돌이 놓여 있다. 중앙 기둥구멍과 북벽사이에 타원형의 노지<爐址>가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무문토기가 집중분포되어 있다. 출토유물은 기둥구멍을 중심으로 서북쪽에 갈돌, 노지, 대석<臺石> 등이 있어 중심부에 부엌이 있었던 것 같고, 동남쪽에는 숫돌과 석재편 등이 있어 도구제작처로 추정된다. 기둥구멍으로 보아 원형의 직립벽에 원추형 지붕을 씌운 형태로 생각된다. 원산동 주거지는 모가 죽은 장방향으로 동쪽부분이 대부분 유실되어 남아 있는 크기는 남북 1.9m, 동서 2.3m이다. 기둥구멍은 벽을 따라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지붕의 형태는 우진각으로 추정된다. 주거지 내부에는 유물이 없으며 주변에서 많은 석재편이 출토되었다. 석곽묘은 원산동 주거지 부근에서 석실과 일부 천장석을 갖춘 채 확인되었다. 동서장축의 석실은 동서길이 1.8m, 너비 75∼80㎝, 깊이 70㎝로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이다. 석실의 동벽은 1매의 장대석으로 축조하였고 남북벽은 할석을 쌓아 구성하였다. 석실바닥은 자연암을 깍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2∼3매의 천정석을 덮었다. 유물은 철쭉과 관못, 관장식이 있으며 관못의 위치로 보아 나무관은 길이 150㎝, 너비 70㎝로 추정된다. 석실구조로 보아 삼국시대 수혈식<竪穴式> 석실분으로 보인다.
이들 유적은 돌머리라 불리는 표고 20∼30m의 낮은 구릉지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구릉정상부를 경계로 마을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지역이다. 이 일대는 영산강 지류인 대촌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곳으로 취락지 형성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임암동 주거지(집자리)는 일부 유실되었으며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으로 지름 4.3m, 면적 14.86㎡이다. 내부구조는 북벽 가까이에 감실<龕室>이 있으며, 중앙과 남북에 각 2개의 기둥이 있는데 남북구멍은 대칭이다. 주거지 남쪽에는 33∼80㎝너비의 입구가 있으며 중앙에는 갈돌이 놓여 있다. 중앙 기둥구멍과 북벽사이에 타원형의 노지<爐址>가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무문토기가 집중분포되어 있다. 출토유물은 기둥구멍을 중심으로 서북쪽에 갈돌, 노지, 대석<臺石> 등이 있어 중심부에 부엌이 있었던 것 같고, 동남쪽에는 숫돌과 석재편 등이 있어 도구제작처로 추정된다. 기둥구멍으로 보아 원형의 직립벽에 원추형 지붕을 씌운 형태로 생각된다. 원산동 주거지는 모가 죽은 장방향으로 동쪽부분이 대부분 유실되어 남아 있는 크기는 남북 1.9m, 동서 2.3m이다. 기둥구멍은 벽을 따라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지붕의 형태는 우진각으로 추정된다. 주거지 내부에는 유물이 없으며 주변에서 많은 석재편이 출토되었다. 석곽묘은 원산동 주거지 부근에서 석실과 일부 천장석을 갖춘 채 확인되었다. 동서장축의 석실은 동서길이 1.8m, 너비 75∼80㎝, 깊이 70㎝로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이다. 석실의 동벽은 1매의 장대석으로 축조하였고 남북벽은 할석을 쌓아 구성하였다. 석실바닥은 자연암을 깍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2∼3매의 천정석을 덮었다. 유물은 철쭉과 관못, 관장식이 있으며 관못의 위치로 보아 나무관은 길이 150㎝, 너비 70㎝로 추정된다. 석실구조로 보아 삼국시대 수혈식<竪穴式> 석실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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