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인문묘 -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하는데 공을 세운 김인문의 묘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서악동 1006-1

무덤의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삼국시대 말기의 왕릉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묘 앞의 왼쪽에 묘비의 귀부가 남아 있는데 무열왕릉의 귀부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김인문묘는 효소왕이 김인문을 태대각간으로 추증하고 695년(효소왕 4년) 10월 27일에 예로써 서울 서쪽 언덕에 장례를 지냈는데 그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다.

지금 서악동에는 태종무열왕을 비롯하여 김양묘와 김인문묘가 있으니, 당시 이곳은 김씨 왕실의 장례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되며, 김인문도 왕족으로서 유능하고 삼국통일에 공이 크기 때문에 이곳에 후장한 것으로 보인다.

김인문(629~694)는 신라 삼국통일기의 장군이며 외교관으로 자는 인수,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며 문무왕의 친동생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유가서(儒家書)를 많이 읽고, 또 장자, 노자, 부도(浮屠, 불교)의 책도 섭렵하였다. 특히 예서를 잘 쓰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였으며 향악을 잘하여 넓은 식견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김춘추와 김유신을 도와 백제, 고구려 정벌에 힘썼고 여생을 당나라에서 보내면서 (일생동안 7번, 22년간) 양국간의 분규의 해결과 중재에 많은 공을 세웠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