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구황동 313 분황사
이 석탑< 石塔 >은 돌을 흙으로 구워 만든 전돌< 塼石 >처럼 깎아 만들어 쌓은 석탑으로, 전돌로 쌓은 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석탑< 模塼石塔 >이라고 부른다. 탑이 세워진 것을 분황사< 芬皇寺 > 창건< 創建 >과 같은 신라 선덕여왕< 善德女王 > 3년(634)으로 보고 있으며, 3층으로 되어있는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것으로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수리 당시 2층과 3층 사이에 들어 있던 사리함< 舍利函 > 속에서 각종의 옥류< 玉類 >, 가위, 은바늘 등과 함께 숭녕통보< 崇寧通寶 >, 상평오수< 常平五銖 > 등 고려시대< 高麗時代 >의 중국< 中國 > 주화< 鑄貨 >가 발견됨으로써 창건 당시의 사리장치< 舍利裝置 >에 추가하여 고려시대에서도 탑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동전을 넣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넓은 방형< 方形 >의 기단< 基壇 > 위에 세워진 1층탑신< 一層塔身 >의 4면에 화강암< 花崗岩 >으로 만든 출입구가 있으며, 양편에는 불법< 佛法 >을 수호하는 금강역사< 金剛力士 >라고도 하는 인왕상< 仁王像 >을 조각< 彫刻 >하였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모습은 신라조각의 걸작품에 속한다.
이 석탑< 石塔 >은 돌을 흙으로 구워 만든 전돌< 塼石 >처럼 깎아 만들어 쌓은 석탑으로, 전돌로 쌓은 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석탑< 模塼石塔 >이라고 부른다. 탑이 세워진 것을 분황사< 芬皇寺 > 창건< 創建 >과 같은 신라 선덕여왕< 善德女王 > 3년(634)으로 보고 있으며, 3층으로 되어있는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것으로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수리 당시 2층과 3층 사이에 들어 있던 사리함< 舍利函 > 속에서 각종의 옥류< 玉類 >, 가위, 은바늘 등과 함께 숭녕통보< 崇寧通寶 >, 상평오수< 常平五銖 > 등 고려시대< 高麗時代 >의 중국< 中國 > 주화< 鑄貨 >가 발견됨으로써 창건 당시의 사리장치< 舍利裝置 >에 추가하여 고려시대에서도 탑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동전을 넣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넓은 방형< 方形 >의 기단< 基壇 > 위에 세워진 1층탑신< 一層塔身 >의 4면에 화강암< 花崗岩 >으로 만든 출입구가 있으며, 양편에는 불법< 佛法 >을 수호하는 금강역사< 金剛力士 >라고도 하는 인왕상< 仁王像 >을 조각< 彫刻 >하였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모습은 신라조각의 걸작품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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