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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식씨가옥 - 조선중기의 양반집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경주시 교동 69

최식(崔植)의 9대조때 요석궁(謠石宮)터라 전해오는 길지(吉地)에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입지하였는데 주위에 최씨가문의 많은 한옥들이 밀집되어 있다.
ㄱ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 그리고 一자형의 중문간 행랑채를 연속하여 배치하였는데 마치 튼 ㅁ자형을 이룬다. 서당으로 사용하던 별당과 천석곳간, 사당은 따로따로 건축하였다.
남향한 대문간 행랑채를 들어서면 곧바로 사랑마당이 되고 왼쪽(서쪽)으로 一자형 별당(서당)이 동면(東面)하여 서 있으며 사랑채는 남면(南面)한다.

사랑채는 사랑대청, 사랑방, 침방이 十자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방과 누마루가 남쪽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이 되고 안채는 부엌이 동쪽에 있으며 안방, 대청, 건넌방들이 일렬로 늘어서며 건넌방 앞에 작은 대청이 있어 마치 두 개의 대청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큰 대청도 안 마당의 중심에 있지 않고 한쪽에 치우쳐 작은 대청과의 위계가 명확하지 못하다. 여기에 또 다른 방들이 전면으로 돌출되어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사당은 안채 북쪽으로 따로 쌓은 담장 속에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크기로 건축되어 있다.

현재 이 집의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 11월 화재로 소실되어 안채와 천석 곳간만 남아 있는데 원래는 공간 분할이 명확해서 사랑마당, 행랑마당, 작업마당, 안마당, 고방마당, 사당마당 등 6개의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

소실된 사랑채의 구조는 장대석으로 바른 층 쌓기를 한 높직한 기단위에 요석궁터에서 모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다듬은 초석들을 놓고 방주(方柱)들을 세워 납도리를 받친 납도리 양식이었다.
가구(架構)는 오량으로서 대들보를 앞 뒤 평주 위에 걸고 판형의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친 뒤 다시 이 위에 원판 모양으로 깎아 만든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데 처마는 홑처마이고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안채의 구조는 사랑채와 같으나 다만 대청의 전면기둥 한 개와 안방 앞 툇마루에 선 기둥 세 개만은 두루기둥으로 되어 있다.
부엌 앞 쪽의 방 툇마루는 계자 난간을 가설하였다.
천석곳간은 단순한 민도리집으로 맞배지붕의 양쪽 박공에 풍판을 달아 화려하고 견고하게 지어 사랑마당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 경제적 상류계급으로서 자기과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뜰에는 석련지(石蓮池), 대석(臺石) 등 석물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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