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주시 남면 신산리
이준(1545∼1624)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평정한 공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과 전성군<全城君>으로 책봉되고, 이후 이조판서<吏曹判書>와 좌참판<左參判>을 지낸 문신으로, 자는 평숙<平叔>, 호는 뇌진자<瀨眞子>·서파<西坡>이다. 이 초상화는 크기 178㎝×97㎝로, 공신 책봉 당시의 관례에 따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사모<烏紗帽>에 정장 관복을 하고 공수<拱手>자세로 왼쪽으로 약간 비켜 앉은 전신좌상<全身坐像>이다. 옷주름은 앉은 자세와 상관 없이 날카로운 직선으로 처리되었는데, 이러한 처리는 당시 공신상<功臣像>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사모의 뒷면에 낮추어 꽂는 사모뿔의 형식은 안정되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격식은 조선 전기의 수법으로 조말생<趙末生> 영정, 같은 시대의 이원익<李元翼> 영정(유형문화재 제80호)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인다. 얼굴은 묵선<墨線>으로 처리한 후 채색하였는데, 손상이 심하였던 것을 근래 수리한 것이다.
이준(1545∼1624)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평정한 공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과 전성군<全城君>으로 책봉되고, 이후 이조판서<吏曹判書>와 좌참판<左參判>을 지낸 문신으로, 자는 평숙<平叔>, 호는 뇌진자<瀨眞子>·서파<西坡>이다. 이 초상화는 크기 178㎝×97㎝로, 공신 책봉 당시의 관례에 따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사모<烏紗帽>에 정장 관복을 하고 공수<拱手>자세로 왼쪽으로 약간 비켜 앉은 전신좌상<全身坐像>이다. 옷주름은 앉은 자세와 상관 없이 날카로운 직선으로 처리되었는데, 이러한 처리는 당시 공신상<功臣像>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사모의 뒷면에 낮추어 꽂는 사모뿔의 형식은 안정되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격식은 조선 전기의 수법으로 조말생<趙末生> 영정, 같은 시대의 이원익<李元翼> 영정(유형문화재 제80호)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인다. 얼굴은 묵선<墨線>으로 처리한 후 채색하였는데, 손상이 심하였던 것을 근래 수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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